필라델피아의 제헌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대표들이 만든 규칙때문이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면서 대표들은 이 회의가 결정을 바꿀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제헌 회의 대표들은 어떤 제안을 논의하고 투표하고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는 일 뿐 아니라, 어떤 결정이나 어떤 제안도 다시 논의할 것을 요구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제안이 거부당하면 나중에 그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습니다. 처음에 했던 것과 똑같은 연설이 나중에 다시 되풀이 됐습니다. 한가지 안건을 토의하는데 몇주 또는 몇달이 걸렸습니다.

제헌 회의는 이미 내린 결정을 바꿀수 있다고 합의한 다음 기밀 규정에 동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경비원이 의사당 출입문에 배치됐습니다. 신문 기자들은 안에 들어갈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표들은 제헌 회의 내용을 공개된 자리에서는 논의할수 없었습니다. 기밀 규정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 특히 유럽에서는 제헌 회의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제헌 회의가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려 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럽인들은 공화제란 스위스와 같이 조그마한 나라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아메리카 대륙과 같이 넓은 곳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유럽의 어느 왕자가 아메리카의 왕으로 추대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프러시아의 헨리 왕자가 틀림없다고 장담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영국왕 죠지 3세의 둘째 아들 프레드릭 어거스터스가 틀임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아무런 뉴스가 나오지 않자 미국 사람들까지 그같은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제헌 회의가 열리는 동안 토마스 제퍼슨은 프랑스에 미국 대표로 가있었습니다. 기밀 규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제퍼슨은 화가 났습니다. 그는 언론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40여년후에서야 제임스 매디슨은 그같은 규정을 만들게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매디슨은 만약 회의가 일반에 공개됐다면 어떤 대표도 특정 안건에 대해 발언을 한 다음에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처음 자신의 발언이 잘못됐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었습니다. 매디슨은 회의가 개방됐었다면 제헌회의는 실패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표들이 자유롭게 말을 할수 있도록 해주는 또 하나의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체 위원회라 불리우는 토론 방식이었습니다. 사리에 맞지 않는 방식인것 같으면서도 이 방식은 지금까지도 의결 과정에서 유효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표들이 어떤 안건에 관해 발언을 하고 표결을 한 후에도 입장을 바꿀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위원회 안에서 한 것이라면 대표의 표결은 영구적인 것으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필라델피아 제헌회의를 전체 위원회 방식으로 하기 위해 대표들은 의장을 선출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매사츄셋즈의 대표인 나타니엘 고람(Nathaniel Gorham)을 선출했습니다. 매일 오전 10시면 회의가 시작되고, 전체 위원회 방식으로 회의가 진행된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죠지 워싱턴은 의장석에서 물러났습니다. 나타니엘 고람이 대신 의장석에 앉습니다. 논의가 끝나면 죠지 워싱턴이 다시 의장석에 가서 앉습니다. 그리고는 내일 회의가 다시 시작된다고 말하고 폐회를 선포합니다. 그같은 일이 매일같이 반복됐습니다.

5월 29일, 대표들은 버지니아주 대표의 발언을 들었습니다. 그 발언은 제임스 매디슨과 그외 버지니아 대표들이 계획한 정부 구성안이었습니다. 33세의 버지니아주 지사 [에드먼드 랜돌프]가 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먼저 미국의 현존 헌법, 즉 연방 조항을 설명했습니다. 랜돌프는 이 조항의 우수성과 이를 작성한 사람들을 치하했습니다. 그는 이 조항의 작성자들을 위대하고 현명한 사람들이라고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조항이 전쟁중 13개 주를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나라로서 이제는 무언가 다른 것, 영구적인 것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랜돌프는 모든 주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대표들에게 각자가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나라가 여러개로 쪼개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랜돌프 지사는 버지니아 안을 설명하면서 15개 항으로된 이 계획은 어디까지나 구상에 불과하며, 버지니아는 이를 제헌회의에서 승인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안은 논의가 돼야 하고, 필요하다면 수정을 할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논의가 모든 부문에 걸쳐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른 대표들도 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버지니아안은 가장 영향력이 강했습니다. 3개월 이상 대표들은 각 조항을 토의하고 표결하고 다시 토의하곤 했습니다. 버지니아 안은 필라델피아 제헌 회의의 가장 주된 의제가 됐습니다. 회의가 끝나면서 버지니아 안은 결국 미국 헌법의 기초가 됐습니다.

필라델피아 회의 개최의 처음 목적은 연방 조항을 좀더 효과적으로 바꾸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버지니아 안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버지니아 안은 완전히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버지니아 안에 대한 토의는 5월 30일에 시작됐습니다. 에드먼드 루돌프는 즉각 수정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여러주의 연방 체제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체제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전국을 총괄하는 아메리카의 중앙 정부가national government로써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중앙 정부 즉 national government는 최고, 즉 supreme 입법, 사법, 행정의 기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그로부터 한두달 동안 철저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대부분의 대표들은 의자에 얼어붙은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과연 말을 알아들었는지 의아할 지경이었습니다. 세가지 분야를 가진 정부를 구성한다는 안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표는 없었습니다. 여러 주는 이미 그같은 체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national 이니 supreme이니 하는 말이 과연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서로 다른 점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 의문이었습니다.

대표들은 며칠동안이나 national 이니 supreme이니, federal이니 하는 용어들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제임스 매디슨과 펜실바니아의 구베니어 모리스가 이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매디슨은 연방 정부는 각주를 대상으로 일하는 것이며, 내쇼날 정부는 직접 국민을 대상으로 일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리슨은 연방정부는 관련 당사자들간의 신뢰에 바탕을 둔 합의에 불과하며, national government는 자체적으로 권한을 갖고 완전한 정부 기능을 할수 있는 체제라고 말했습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피어스 버틀러는national government가 왜 필요한지를 물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각 주가 국가가 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델라웨어의 죤 디킨슨은 이에 대해, ‘우리는 하나의 국가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여러 부분, 또는 각 주로 나누어져 있기는 해도 하나의 국가로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베니어 모리스가 그 뒤를 이어설명했습니다. 그는 필라델피아에 모인 대표들이 모두 사망한 뒤의 미래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대표의 아들 딸과 손자 손녀들은 내가 필라델피아의 국민이다, 뉴욕의 국민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합중국 국민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구베니어 모리스는 ‘우리의 세대는 사라져 간다. 우리의 뒤는 아메리카 민족이 이어 가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모리스는 최고의 권한을 가진 national government 가 각 주의 상위에 있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20년후에 독재자가 등장하는 것 보다는 지금 최고의 권한을 가진 정부가 등장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대표들은 national government구성안을 승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