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이번 주에 나치 독일에 대한 승전과 유럽에서의 제 2차 세계 대전 종식 6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중에 연합군은 독일의 주요 도시들을 폭격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재산 피해와 인간 고통이 초래됐습니다.

독일인들은 수 십년 동안,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것을 대체로 삼가해 왔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신세대들은 최근 들어 그와 같은 금기를 깨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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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2월 13일 밤, 연합군이 독일의 유서 깊은 도시, 드레스덴을 폭격했습니다. 당시 독일에서 전범으로 수감되어 있다가 드레스덴 폭격을 목격했던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넨쿠트씨는 드레스덴이 예술품과도 같이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회상합니다.

보넨쿠트씨는 반전 소설, 제5 도살장 (Slaughter Five)이라는 제목의 저서에 당시 상황을 담아냈습니다. 보넨쿠트씨는 공습이 전개됐을 때, 다른 약 백 명의 미국인 수감자들과 함께 드레스덴에 있는 한 식품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도살장에 수감되었는데 바로 그곳이 공습을 견디어 낼 수 있는 방공호 같은 역할을 했던 겁니다. 도살장 아래에 있는 깊은 지하실에는 고기를 매달아 놓는 서늘한 저장고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저장고 때문에 우리가 공습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처 공습에 대비하지 못했던 다른 수 만 명은 그다지 운이 좋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3만 명의 드레스덴 주민들과 주민수의 최소한 두 배가 넘는 난민들이 전쟁의 포화 속에 사라졌으며, 엘베강의 플로렌스로도 알려진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연합군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에 독일에 약 150만 톤의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약 8만 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60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수백개의 도시들이 폐허가 됐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은 수많은 차량과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민간인의 역할이 중요했던 물량 공세적인 전면전이었습니다.”

 콜로라도 대학의 역사학자 데니스 쇼월터씨는 당시의 대규모 공습은 두 가지 목 적을 띄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최첨단 현대 전쟁을 지탱하는 군수 산업을 파괴하거나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전면전에선 전투 병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민간인의 사기와 동원력 마저 파괴하기 위한 목적의 소모적인 재래식 폭격 전략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영국 공군의 작전 실패로 지역 폭격이라 불리는 전술이 개발됐다고 쇼월터 교수는 말합니다.  지역 폭격이란, 전략적 목표물을 공격하려다 독일 군의 대공 방위망에 의해 폭격기를 잃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에, 폭격기들이 고도 비행을 하며 기차역과 공장, 광산 등 목표물 주변의 전 지역을 파괴하기 위해 대량 폭탄을 투하하는 것입니다. 영국은 또한 처음 폭발한 뒤에도 오랫동안 파괴력을 지속하는 소이탄도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몇 십년 동안 독일은 전쟁 중 입은 손실에 대해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메리칸 연구소에서 현대 독일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잭슨 재인스 국장은 그 가장 분명한 이유는 나찌 독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남긴 커다란 아픔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독일은 국가의 재건과 서방 민주주의 국가로 독일을 건설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것은 나찌가 해왔던 것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파헤치는 것은 진정한 국가적 이익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수 년간 언론과 서적, 그리고 공개 회의 석상에서는 대규모 공습으로 인한 인명 손실에 보다 관심의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잭슨 재인스씨는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폭격이 현재 주목되는 이유 중 하나는 조부모들이 갖고 있었을 양심의 가책에서 자유로운 독일 신세대들의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런 가책을 느끼고 있는 일부 독일 인들은 정치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에 공개적인 차원으로 얘기하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신세대들은’ 폭격으로 사망한 5,6, 7만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화제가 독일의 신국수주의자들을 고무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드레스덴 폭격 참사 60주년을 맞아 독일의 극우파 민주 당원들은 독일이 유죄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연합군의 공격을 대규모 살인행위이자  드레스덴의 폭탄 홀로코스트라고 묘사했습니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독일이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한 그들의 역사를 재평가하는 것이 옳다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드니스 쇼월터씨는 독일의 손실은 독일 도시들에 대한 연합군의 폭격을 가져온 나찌의 침략과 관련해 연구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