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슬픈 내용입니다. 이것은 사람, 종교, 사상, 문화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고집센 사고와 타협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또한 유럽인들과, 오늘날 우리가 북 아메리카라고 불리우는 땅에서 수만년을 살아온 원주민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아메리카 합중국이라고 불리우게된 미국 동부 지방에는 여러 원주민 인디언 부족들이 살고 있었 습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언어를 갖고 있었고, 어떤 부족은 농업을, 어떤 부족은 사냥을 주업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부족은 매우 전투적이었고 또 어떤 부족은 평화로운 부족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들을 쎄네카(Seneca), 모호크(Mohawk), 쎄미놀 (Seminole), 체로키 (Cherokee)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이들은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훨씬전부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종의 종교, 즉 강한 정신적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러 부족은 같은 믿음을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동부 지방 인디언들은 매우 발달된 상거래 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많은 부족들이 전국에 걸쳐 상거래를 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기록상으로 유럽인과 동부 해안 지대 인디언이 최초로 만난 것은 1500년대였습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 어부들은 대서양을 건너 미 동부 해안 앞바다에서 고래잡이를 했습니다. 이들은 해안 지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살았으며 현지의 인디언들과 거래를 했습니다.

유럽인들은 흔히 자신들을 위해 일을 해준 인디언들에게 값을 지불했습니다. 양측은 이것으로 서로의 관계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차례 각기 다른 집단들이 이곳에 영구적인 거처를 마련하려 했지만 추운 겨울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고기잡이를 위한 거처는 임시 시설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동북부 지방, 즉 뉴잉글랜드에 처음으로 영구적인 정착민이 도착한 것은 1620년이었습니다. 이들은 인디언들과 평화롭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이들은 식량 조달을 위해 인디언들과 거래를 원했습니다.

정착민들은 싸움을 하면 자신들이 수가 적기 때문에 금방 패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착하자마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유럽인들과 인디언들 사이에 갖고 있던 땅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땅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그후 수백년 동안에도 풀지못한 문제를 야기시켰습니다.

유럽 정착민들에게 땅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영국은 물론 다른 모든 나라에서도 땅은 부를 상징했습니다. 많은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막대한 부와 정치 권력을 의미했습니다. 새로운 땅에 정착한 자들은 유럽에서 토지를 소유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가난했었습니다. 그들은 또 소수파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신천지에 도착했을때는, 광대한 지역에 아무도 임자가 없는것 처럼 보였습니다.

영국의 회사들은 새로운 땅에 정착할 사람들을 찾아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서양을 건너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땅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꿈이 실현되는 일이었습니다. 땅은 그들에게 부와 힘을 안겨주었습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땅이란 개인이 차지할수 없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동시에 땅은 누구나 이용을 할수 있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면 어떤 곳에든 곡식을 심고 살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갔습니다. 이들은 극도로 일을 하지 않고도 잘 살았습니다. 그들은 땅을 알고 환경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갈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땅의 형태를 바꾸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느 지역에서 몇년동안 농사를 지은 다음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곤 했습니다. 농사를 지었던 땅은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 가도록 놓아두었습니다. 사냥을 할때도 어느 한 지역에서 몇 년 동안 살다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갔습니다. 그들은 꼭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했습니다. 그래서 동물의 수는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자연을 이해했고, 자연을 이용해 살았습니다.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유럽인은 처음에는 수가 적었습니다. 그들은 땅을 원했습니다. 인디언들은 그들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이용할수 있고 곡식을 심을수 있는 땅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함께 어울려 살기가 쉬웠습니다. 인디언들은 정착민들에게 곡식을 심고 새 땅에서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정착민들이 땅을 차지하려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땅을 소유한다는 관념은 인디언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공기를 소유한다거나 구름을 소유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해가 갈수록 많은 정착민들이 도착했고 갈수록 많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넘겼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나 동물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습니다.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자기땅에 들어오지 말라고 요구했 습니다.

인디언과 정착민들간에 종교는 또 하나의 문제 거리였습니다. 뉴잉글랜드 정착민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매우 진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신앙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이며, 온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믿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착 집단들은 인디언들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인디언들이 종교가 없기때문에 과거에 악마가 변해서 사람이 된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착민들은 인디언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자로 변화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도대체 왜 자신이 변해야 되는지 이유를 알수 없었습니다.

유럽의 정착민들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보이지 않는 힘을 굳게 믿는 극히 종교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디언들은 자연과 아주 밀접하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만물은 모두 서로를 의지하며 산다고 믿었습니다. 모든 인디언 부족들은 우주를 창조한 존재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매일의 삶에서 창조주가 해놓은 일을 인식하며 살아갔습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과 정착민들 사이에는 또 다른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중요한 것이 질병이었습니다. 정착민들은 유럽으로부터 질병을 갖고 들어왔습니다. 예를들면 천연두, 즉 마마는 유럽에서 아주 흔한 병이었습니다. 일부 정착민들은 그 병을 앓고 있지는 않았지만 몸속에 그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마마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은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퍼지자 어떤 부족은 완전히 멸종이 됐습니다. 마마는 그같은 질병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외에도 유럽인들이 퍼뜨린 질병은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미국 동북부 해안 지대의 정착민들은 모두 원주민들과 마주쳤습니다. 두 인종은 서로 친구로 만났습니다. 이들은 서로 식량을 비롯한 여러가지 물건들을 거래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위기를 불러오는 사건들이 생기곤 했습니다. 어떤 정착민은 인디언들에게 자기 땅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정착민이나 인디언이 살해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건이 생기고 나면 우호적인 분위기는 두려움으로 변했습니다. 공격으로 보이는 행위에 보복을 하기 위해 상대방을 역습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중 하나의 예가 이른바 필립왕의 전쟁(King Philip’s War)이라는 사건입니다.

동부 지방 최북단에 있는 왐파노아그 (Wampanoag) 부족 추장은 마타콤(Matacom)이었습니다. 영국인들에게 그는 필리왕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부족의 도움이 없었으면 그곳에 처음 정착한 영국인들은 첫 해 겨울에 생명을 보존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왐파노아그 족은 영국인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옥수수 심는법, 그외 다른 작물 재배법을 알으켜 주었습니다. 여러해 동안 양측은 매우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이해 부족과 공포가 싸였습니다. 마타콤의 동생이 유럽의 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마타콤은 유럽인들을 원망했습니다. 그는 또 유럽인들이 갈수록 땅을 변경시키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는 유럽인들이 땅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소한 사건들이 발생하던 끝에 정착민들과 함께 살던 인디언 기독교 신자가 살해됐습니다. 정착민들은 인디언 3명을 살해함으로써 그기 보복했습니다. 그러자 즉각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1675년에 발생한 그 전쟁은 거의 2년이나 계속됐습니다. 그 전쟁은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양쪽 모두의 남자, 여자, 어린이등이 살육을 당했습니다. 역사가들은 정착민 600여명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디언들은 약 6천명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그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인디언은 나라간쎄트(Narraganset) 부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간쎄트 부족은 전쟁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어느쪽도 편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디언들을 두려워한 유럽인들은 나라간쎄트 인디언도 가리지 않고 살해했습니다. 그같은 공포와 이해 부족, 그리고 타협의 실패는 신 대륙 모든 곳에서 영국 정착민들과 인디언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끼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