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소속 부대를 이탈해 월북한 전 미군 병사 찰스 젠킨스씨는 북한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리켜 사악한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젠킨스씨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일본에 영구 정착한 이래 31일 첫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은 주민들을 착취하고 탄압하는 사회주의 체제 정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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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쓰 캐롤라이나주 출신 주한 미군 탈영병 찰스 젠킨스씨는 지난 해 11월 , 30일간의 금고형과 함께 불명예 제대조치 됐습니다.

젠킨스씨는 한달 뒤인 12월, 64세의 병든 몸으로 일본 도쿄 북서쪽 약 300킬로미터 떨어진 외딴 섬 사도에 도착해, 북한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 소가 히토미씨, 그리고 두 딸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젠킨스씨는 31일 일본 정착후 가진 첫번째 기자회견에서 , 북한 지도자 김정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은 한번도 김정일을 만난 적은 없지만, 김정일은 사악한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젠킨스씨는 김정일 정권이 계속 되는 한, 몇몇 꼭두각시들외에 아무것도 좋아질 수 없다면서 북한정권은 주민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주의 체제라고 말했습니다.

1965년 1월, 24세의 주한 미군 제 1 기병 사단 소속 젠킨스 하사는 야간 정찰활동 중 탈영해 북한으로 넘어갔습니다. 젠킨스씨는 이후 군법 재판소에서 당시 전사자가 많이 나던 베트남으로의 전속이 두려워 월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생활은 비참했습니다. 젠킨스씨는 북한 공작기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등 공작원으로 활동했지만, 가혹한 고문 및 구타행위 ,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후 젠킨스씨는 1978년 북한 공작기관원들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피랍여성 소가 히토미씨와 결혼했습니다. 지난 2천 2년 고이즈미 주니치로 일본 총리의 북한 방문 이후, 소가씨는 다른 네명의 피랍 일본인들과 함께 마침내 북한을 떠나도록 허용받았고 , 그해 7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남편 젠킨스씨, 그리고 두딸과 잠시 재회했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젠킨스씨는 노쓰캐롤라이나 특유의 느린 말투로 자신은 현재 매우 만족하고 있으며 곧 다른 일본인들처럼 사도섬에서 잘 지낼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젠킨스씨는 이어 북한에서의 첫 15년은 개처럼 살았다고 말하고, 하지만 소가씨와 결혼하면서 삶이 바뀌었고 더 이상 구타당하지 않게 됐다고 간간히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젠킨스씨는 북한에서 다른 피랍 일본인들을 만난 적이 있는지, 또는 어떤 학대들을 당했는지등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거부하면서, 만일 자신이 힘들었던 것들을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평생토록 말해도 모자랄 것이라고만 말했습니다.

젠킨스씨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2천 4년 5월 22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2차 방북때, 일본 대표단을 만났을때라고 말했습니다. 젠킨스씨는 그때 만일 자신이 옳은 판단을 내린다면 딸들과 함께 북한에서 벗어나 일본에 정착할 수 있을 것임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측의 반응과, 탈영병 젠킨스씨의 미국 소추 면제 여부등 복잡한 외교 문제가 얽혀 젠킨스씨는 당시 북한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소가씨 부부에 대한 사회적 동정 여론을 지적하면서, 그리 달가와하지 않는 미군 당국에 선처를 베풀도록 압력을 가했습니다.

이제 사도섬에서 남은 여생을 살고자 하는 젠킨스씨는TV 를 시청하거나, 일본어를 배우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젠킨스씨는 앞으로 운전 면허증을 취득하고 직업도 구할 것이라면서 북한에서 힘든 40년을 보냈기 때문에 일본에 정착해 사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하고, 북한에서 태어난 두딸, 브린다와 미카도 잘 적응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젠킨스씨는 또, 빠른 시일내에 미국을 방문해 사랑하는 91세의 고령인 노모와 가족들과 재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