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15년 간의 가택 연금 끝에 17일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85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자오쯔양은 지난 1989년의 텐안먼 광장 민주화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가 권좌에서 축출됐었습니다. 자오 전 총서기의 딸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하는 메세지에서 아버지가 결국 자유롭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VOA 베이징 특파원의 보도로 자오즈양의 사망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소식을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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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중국의 경제 개혁과 외부 세계에 대한 개방의 핵심 설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자오즈양은 1980년대 말에 공산당 총서기로 재직하는 동안 정치적인 개혁을 추구함으로써 개혁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 동시에 공산당 강경파의 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홍콩 시티 대학교 정치학과 조셉 쳉 교수는 자오쯔양이 텐안먼 광장 사태 때 중국의 정치 개혁을 지지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그 이유는 바로 그가 공개적으로 시위 학생들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오쯔양은 수 백명, 어쩌면 수 천명의 대부분 젊은 시위자들이 중국 군인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지난 1989년의 학생 주도 민주화 시위 당시에 학생들의 주장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실각한 후 지난 15년 동안 가택 연금을 당했습니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자오쯔양이 당의 분열을 기도했다고 비난하면서 그를 숙청했습니다. 그 후 자오쯔양은 다시는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중국 당국은 자오쯔양의 사망 소식을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공식 확인하면서도 국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는 이를 인용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신화통신도 자오즈양이 오랫동안 심장 질환과 폐 질환을 앓았다고 간단하게 보도했습니다.

새로운 시위가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소문 속에 최근 들어 텐안먼 광장의 경비가 한층 강화됐습니다. 그러나, 그같은 시위가 다시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베이징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중국 정부는 텐안먼 광장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이나 기념식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마다 텐안먼 광장에서 유혈 진압이 벌어졌던 6월 4일 무렵이 되면 중국 경찰은 정부에 텐안먼 사태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있습니다.

주창자들은 수 년전 부터 당국에 의해 반혁명적인 반란으로 낙인 찍힌 1989년의 텐안먼 시위에 대한 재평가를 정부에 촉구하고 있습니다. 자오쯔양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지 몇 시간 만에 그같은 요구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해 온 렌 완딩 씨는 자오쯔양이 시위자들에게 눈물로 호소하던 1989년 5월을 회상했습니다. 당시 자오쯔양은 중국 군대의 유혈 진압을 피하기 위해 텐안먼 광장으로 나가 학생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했습니다. 자오쯔양의 사망 소식을 듣고 렌 씨는 자오쯔양은 민주주의의 기수였다고 평가하면서 정부가 언젠가는 1989년의 텐안먼 사태를 재평가할 것이라는 희망을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렌 씨는 조만 간에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렌 씨는 공산당은 민주화 운동을 막기 위해 지난 1989년에 군대를 동원한 것이 실수였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서, 공산당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권력 보호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따라서 공산당은 어떤 형태의 민주화 운동에도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관측통들은 중국 정부가 새로운 논란이 촉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오쯔양의 사망을 조용히 비 정치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자오쯔양의 사망이 가난한 농민과 실업자, 그리고 개혁 확대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다시 결집하는 계기로 이용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관측통들은 지적했습니다.

한편, 외국의 지도자들은 자오쯔양의 사망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중국에 민주적인 개혁을 추진하라고 촉구했고, 중국 본토와의 문제를 총괄하는 타이완의 대륙위원회는 중국이 자오쯔양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개혁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