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흑인여성가운데 최초로 연방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흑인 최초로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했던 셜리 치좀 여사가 새해 첫날인 1월 1일, 80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치좀 여사의 생애와 약력을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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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세인트 힐 치좀 여사는 미국으로 이민 온 아프리카 기이아나 출신의 아버지와 카리브해 발바도스 태생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뉴욕 브루클린의 베드포드-스타이브산트 빈민가 에서 태어난 치좀 여사는 후에 연방의회에 진출했을때 이 지역 선거구를 대표했습니다.

치좀 여사는 브루클린 대학에서 뛰어난 토론 능력으로 여러차례 상을 받았을 때, 일부 지도 교수들로 부터 정치계 진출을 권유받았습니다.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육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셜리 치좀씨는 정치계에 입문하기 전 몇 년동안 교편을 잡으면서, 뉴욕 주 주 의회에서 정치 경험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치좀씨는 1969년 연방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4년간 주의회에서 봉직했습니다.

1972년, 치좀씨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이 예비선거에서 조지 맥거번 상원의원이 허버트 험프리씨를 누르고 승리했을 때, 치좀여사가 얻은 득표수는 7퍼센트를 넘지 않았으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1600표 가운데 단지 150표만 획득했습니다.

치좀 여사는 1982년 보수적인 정치 분위기를 바꿀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정계 은퇴를 발표할 때까지 14년간을 하원 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국회의원직에서 은퇴한뒤, 치좀여사는 메사츄세츠 주에 있는 마운트 호리오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흑인 여성들의 국내 정치 기구 조직을 지원하는 등 수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항상 여성의 권리를 위해 강력히 투쟁해 온 셜리 치좀여사는 자신이 흑인이어서라기 보다는 여성이기 때문에 개인적 차별을 더 많이 경험했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치좀여사가 범국민적으로 존경받은 것은 아닙니다. 일부는 치좀여사를 불유쾌한 인물로 생각했고, 치좀 여사 자신도 ‘단체 행동’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매수되지도 남의 말을 따르지도 않은’ 이란 뜻의, Unbought and Unbossed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집필한 치좀 여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 연사로 초정받지 않았던 1992년당시의 한 대담에서, ‘흑인정치인들은 1972년 대통령에 출마했던 일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고 자신을 지나치게 독단적인 성격이라며 멀리했고 백인들은 정계 거물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 다는 이유로 역시 자신을 멀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들은 치좀 여사의 정직함과 청렴함을 존경했고, 많은 여성들은 여성들의 정계 입문의 길을 수월하게 만들어준 치좀 여사의 노력에 감사했습니다. 또 20세기 ‘정치에 가장 영향을 끼친 미국 여성’ 을 다룬 인명록에는 빠짐없이 치좀여사의 이름이 올랐습니다.

흑인 여성 최초로 연방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또 흑인최초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흑인이었던 셜리 치좀여사는 지난 1월 1일, 80세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