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0일은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암살 미수 사건인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암살 계획 시도 60주년을 맞는 날이였습니다. 히틀러는 1933년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 독일 나찌당의 지배에 반대하는 정적들을 몰아내기 위한 잔인한 조치들을 강화하면서 전체주의 정권을 수립했습니다.

나찌 정권은 1939년부터 유럽 대부분을 침공하고 그 과정에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강제 수용소에 수용시켰습니다. 유럽에 거주하던6백만명의 유대인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했습니다. 이같은 무자비한 압제에 직면해 공개적이고 조직적인 저항은 좌절됐습니다. 그러나 소규모 단체들과 개인들은 지하에서 나찌 정권에 계속 저항했습니다.

개신교 신학자, 디트리치 폰 호퍼씨와 외교관인 울리치 폰 해슬, 그리고 어윈 롬멜 육군 원수는 히틀러 정권 전복에 주력한 반 나찌 단체들 가운데 하나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참전 용사로 훈장을 받기도 한 육군대령, 클라우스 폰 스타우펜버그 백작이 히틀러 암살 임무를 맡았습니다. 스타우펜버그 대령은 “우리는 신 앞에서 우리 자신을 시험해 왔으며 그일이 반드시 성사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944년 7월 20일, 스타우펜버그 대령은 군 사령부에서 히틀러와 그의 보좌관들을 만났습니다. 스타우펜버그 대령이 소지한 서류 가방에는 시한 폭탄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폭탄이 터져 4명이 사망했으나 히틀러는 살아남았습니다. 스타우펜버그 대령은 그 자리에서 체포돼 같은날 총살됐습니다. 수천명의 독일인들이 히틀러 암살 계획에 대한 보복조치로 처형됐습니다.

주요 지도자들은 공개 재판에 회부됐으며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고기를 매다는데 사용되는 갈고리에 연결된 피아노 줄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22살의 에왈드 하인리치 폰 클레이스트 육군 중위도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했습니다. 폰 클레이스트 중위는 체포돼 강제 수용소에 억류됐습니다. 폰 클레이스트 중위는 미수에 그친 암살 시도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시도해야 했습니다. 독일의 이름하에서 그같은 범죄자들에 의해 자행된 행위들은 혐오스럽기 그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열린 기념 예배에서 독일 개신교의 저명한 성직자인 울프강 허버 주교는 “우리 사회와 교회는 오랫동안 나찌에 대항한 그 계획과 용맹함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허버 주교는 나찌 치하에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은 헛되이 죽은 것이 아니며, 그들의 업적은 계속 살아 숨쉬고 있다고”고 말했습니다.

허버 주교는 독일인들은 만인의 가치를 위해 앞장선 7월 20일의 남성과 여성들을 자랑스러워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 모두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인간 존엄성이라는 대의를 옹호했습니다.

(영문)

This week marks the 60th anniversary of one of the most famous failed assassinations in history -- the plot to kill German dictator Adolf Hitler. After coming to power through elections in 1933, Hitler established a totalitarian regime, taking increasingly brutal steps to stamp out opposition to Nazi party rule in Germany. Beginning in 1939, the Nazi regime invaded much of Europe and in the process enslaved millions of people in concentration camps, where many were killed, including six-million European Jews. In the face of such ruthless repression, open organized resistance collapsed. But underground, individuals and small groups continued to resist the Nazi regime.

One group of anti-Nazis committed to Hitler's overthrow included Protestant theologian Dietrich Bonhoeffer, diplomat Ulrich von Hassel, and Field Marshall Erwin Rommel. Colonel Count Claus von Stauffenberg, a decorated combat veteran, was entrusted with the task of killing Hitler. "We have tested ourselves before God and it must be done," said Stauffenberg, "for that man is evil incarnate."

On July 20th, 1944, Stauffenberg met with Hitler and his advisers at army headquarters. In his briefcase he carried a time bomb. The bomb killed four men, but not the dictator. Stauffenberg was arrested and shot the same day. Thousands of Germans were executed in reprisal for the plot. The principal leaders were subjected to a show trial, and, on Hitler's orders, hanged with piano wire from meat hooks.

Ewald-Heinrich von Kleist was a twenty-two-year-old army lieutenant and part of the conspiracy to kill Hitler. He was arrested and interned in a concentration camp. Speaking of the failed assassination attempt, Kleist said, "We had to try something. The things being done by those criminals in Germany's name were simply appalling."

In a recent church service in Berlin, Germany's leading Protestant bishop, Wolfgang Huber, said, "Our society, and also our church, struggled for a long time to honor the plans and the daring" of the Nazi resistance. "Those who sacrificed their lives during those days did not die in vain. Their example lives on."

Bishop Huber said that Germans should be proud of the "men and women of July 20th because they stood up for universal values. They saw [that] where remaining idle would result in complicity, resistance is an ethical duty. All of them, in their own way, took a stand in the cause of human dig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