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에는 다시 아침이 찾아왔으며, 레이건 대통령의 지도하에 미국은 더욱 자랑스럽고, 더욱 강력하고, 또한 더욱 훌륭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재임중,1984년이 절정기였다면 반면에 가장 어두웠던 몇년후, [이란 콘트라추문]으로 알려진 사건에 대한 의회 조사가 시작되면서 부터였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레바논에 억류돼 있던 인질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판매대금을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들을 위해 전용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대 이란 무기판매 수익금이 전용되었는지, 또 그런 자금이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비판가들은 [이란-콘트라사건]은 레이건 대통령이 일상적인 직무 수행에 지나치게 소홀했고 측근들을 통솔할 용의가 없었던가 아니면 그럴 만한 능력을 결여했음을 입증한다고 비난했었습니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레이건의 자서전 집필자인 에드먼드 모리스씨는 로널드 레이건의 정치적 유업은, 국가 장래에 대한 믿음과 또 낙천적인 성품에 의해 평가될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리스씨는 레건대통령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점잖았고 이는 인격적인 매력을 더하게 된 소양이었다고 모리스씨는 풀이합니다. 정치적으로 난관에 처했을때에도 레건대통령은 항상 매사에 긍정적이었고 자비심에 넘치고 또 미국을 위해 최선을 추구한다는 점을 일반은 알고 있었다고 모리스씨는 말합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수만명의 조문객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국장을 마친 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캘리포니아의 레이건 기념도서관에 영구안장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