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무장투쟁 단체 하마스의 창설자며 정신적 지도자인 셰이크 아메드 야신이 22일 아침 가자 시티의 자택 부근에 가해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졌습니다.

가자 시티의 한 곳에 이스라엘군 로켓트 포탄이 떨어져 폭발하면서, 한편으로는 대량학살의 테러분자로 규탄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적 영웅으로 찬양받았던 한 인물이 사라졌습니다.

불구자로 휠췌어를 타고 다녔던 67세의 이 노인은 미국 국무부가 테러단체 명단에 올려놓았던 하마스 단원들을 크게 좌지 우지하고 있었습니다. 셰이크 아메드 야신-그는 또한 이스라엘에서 8년간 옥중생활을 마친뒤에도 자신의 원리원칙에 대해 타협하기를 거부했던 박식한 인물로 수백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과 심지어 다른나라 회교도들 사이에서도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하마스에 의한 공격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으례히 비난성명을 내곤했으나 22일 아메드 쿠레야 총리는 이번에 이스라엘은 셰이크 야신을 살해한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행위는 자신의 전 생애를 자기 민족의 독립을 지지하는데 몸받쳐온 저명한 팔레스타인 지도자에게 가한 비겁한 범죄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그 행동을 강경하게 규탄하며 앞으로 발생할 대응 행동에 대해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바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도 야신은 팔레스타인 민족의 위대한 순교자중 한 사람이었다고 부르며 사흘 동안을 애도의 날로 선포함으로써 셰이크 아메드 야신의 죽음을 애석해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래 전에 이룩했어야 할 어떤 일을 비로서 이룩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4년이후 이스라엘은 셰이크 야신이 정신적으로 고취하고 유도한 하마스의 자살폭탄 공격등 많은 테러공격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을 잃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의 루즈 야론 대변인은 셰이크 야신이 없어짐으로써 그 지역은 살기가 더 좋은 곳이 됐다고 논평했습니다.

“아메드 야신은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목표로 삼았던 테러단체의 총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그의 공격 대상이었던 많은 이스라엘인들을 구해주게 되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정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미래의 경계 선을 획정해 놓을 목적으로 일방적인 작전을 취하겠다는 위협을 가함에 따라 하마스는 지난 수개월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증대시켜 왔습니다.

아메드 야신은 지난 1948년에 이스라엘의 한 부분이 돼버린 소도시 애쉬켈른 근교에서 1936년에 태어났습니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에 발생한 사고로 그는 평생을 팔과 다리가 마비된 채 살아야했습니다. 사망하기 전까지도 야신은 카이로에 있는 알 아자르 대학교에서 회교 이슬람의 종교학 학자가 되려고 학업을 계속했었습니다.

그는 이슬람 종교학을 공부하며 현재 이스라엘이 들어선 지역이 회교도의 영지라고 인식하게 됐고 회교도가 통치하는 신생국가의 탄생을 지원해 유태인 국가를 멸망시키자는 자신의 결의를 다졌습니다.

셰이크 야신은 1987년에 회교도 저항운동인 이른바 하마스의 주요 창설자가 된뒤 처음으로 이스라엘측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팔레 스타인인들을 처형하도록 명령했다는 이유로 세이크 야신을 체포 구금했습니다. 이스라엘 재판부는 그에게 종신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야신은 8년이 지나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의 포로교환시 석방됐습니다. 그후 셰이크 야신은 이따금씩 팔레스타인 지도부와의 관계가 긴장되는 경우를 맞기도 했으나 가자 시티로 귀환하면서 영웅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도자 아라파트는 하마스가 테러공격들을 벌이자 야신을 두번이나 가택연금시키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마스의 공격활동이 늘어나면서 지난 수개월 동안 이스라엘 정부관리들은 셰이크 야신이 살해 대상으로 지목됐다고 말해왔습니다. 야신은 지난해 9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부상을 당했지만 그후로도 별로 경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야신은 월요일인 지난 22일에도 다른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기도회에 참석하기위해 집 근처에 있는 회교사원으로 갔습니다. 기도회를 마친뒤 사원을 나서면서 야신은 여러명의 보좌역들로부터 부축을 받으며 휠췌어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이스라엘군 헬리콥터로 부터, 결국 야신과 함께 다른 여러명을 숨지게한 미사일이 발사됐습니다.

셰이크 야신이 사망할 때 그는 거의 눈이 보이지 않았고 듣기도 어려웠으며 몸이 마비된 부분들 때문에 힘도 없이 목청을 높이려는 어조로 속삭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활동을 정신적으로나 신학적 측면에서 정당화할 근거를 제공하는 등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야신이 사망하자 세계 많은 지역에서 비난이 이스라엘로 집중되고 가자 시티는 비통과 분노로 가득찼으며 야신의 장례식에는 수만명이 참가했고, 야신에 대한 비통함과 이스라엘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행진을 벌였습니다. 이와 함께 이스라엘 목표물들에 대한 테러 공격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새로 증폭됐습니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하마스가 어떤 방법으로든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분석가들은 셰이크 야신의 죽음은 하마스가 변함없이 기능을 발휘할수 있고 그가 살해된데 보복 하기위해 자살폭탄 공격들이 더욱 많이 벌어질수 있음을 보여 주려는 노력을 기울임에 따라 사태는 더욱 악화될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