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자 팔레비 국왕을 몰아낸 이란 회교 혁명이 일어난지 25년이 지나면서 이란인들은 이 혁명의 방향과 그 지도자들에게 회의를 품고 있습니다. 이란에서 일고 있는 변화에 관한 자세한 보돕니다.

1979년의 회교혁명을 회고하면서 실망한 한 이란 사람은 “우리는 싸우고 있는 대상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싸우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몰랐다”고 요약합니다. 이란 회교혁명은 이란에서 사회 각부문에 엄격한 통제를 가한 신정정치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이란 사람들은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고, 또 그 혁명에 대해 똑같은 결의를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현재 이란의 6천6백만 인구 중 거의 70%가 25세 이하의 젊은 세대들입니다. 카림 사자드푸르 씨는 베이루트에 있는 아메리칸 대학교의 교수입니다.

“현재 이란 인구의 대부분이 젊은 세대들로 이들은 팔레비 국왕의 치하에서 살아보지 않았으므로 팔레비 국왕이나 그전 정권들에 대해 원한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혁명에 대해 기성 세대들과 같은 결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위성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다른 나라, 특히 서방 국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게 되면서 우리는 왜 이 모양이냐고 묻게 됩니다.”

중동 문제 전문가이며 하와이 대학교 교수인 파리데 파르히 씨는 현재 이란의 젊은 세대들은 일자리를 구하는데 더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종교 지도자들이 이런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대체로 이란 회교정권이 문화적 경제적으로 이같은 요구에 제대로 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을 양산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1997년 선거에서 개혁 성향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혁명의 완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중동 문제 전문가인 라솔 나피시 씨는 지난 25년간 정치적인 회교를 실험해 본 결과, 이제 이란인들은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 개입을 줄이기를 바라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 다른 성취는 우리가 공공연히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고, 정치 제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당국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파리데 파르히 교수는 이제 이란의 개혁은 되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고 낙관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현재 이라크에서 변화에 대한 전반적인 열망 말고도 비정치적인 사회 단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술이라든가, 환경이라든가, 여성의 권리같은 것을 표방하는 단체들입니다. 현재는 이들의 영향력이 미미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큰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타미 대통령의 1997년 당선 이후, 사회적 문화적 제한조치들이 일부 완화됐습니다. 개혁주의자들이 국회를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이란 문제 전문가들은 이란의 정치적 개혁운동이 중대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정책 결정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마네이와 그의 측근 보좌관들 손에 들어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란의 개혁주의자들은 국회에서 권력을 상실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보수적인 혁명수호위원회는 이달 말에 치루어질 총선거에 출마하려는 수백명의 개혁주의 후보들의 자격을 박탈했습니다. 하타미 대통령의 동생이 이끄는 이란 최대의 친개혁 정당은 선거를 보이콧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후보들의 진출 저지와 친개혁주의 유권자들의 참여 부진이 예상되면서 강경노선의 보수파들이 다시 국회를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