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화국에서 가장 위대한 법률가의 한사람인 리차드 골드스톤 헌법재판소 판사가 23년간의 판사 생활을 마치고 물러났습니다. 골드스톤 판사는 1980년대에 당시 인종차별주의 남아공화국에서 유명한 정치 폭력사건들에 대한 조사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1990년대에 그는 전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 유엔 전범 재판소의 수석 검사를 역임했습니다. 그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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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공화국 법조계에서 리차드 골드스톤 판사와 같이 장기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1980년 트란스발주 대법원 판사로 임명된 이래, 골드스톤 판사는 인종 차별을 고착시키려던 인종차별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용감한 판결들을 내렸습니다. 골드스톤 판사는 서로 다른 인종들이 어떤 곳에서 살 것인지를 통제하는 억압적인 ‘인종 지역법’하에서의 기소를 사실상 중단시켰습니다.

1990년대 초에, 골드스톤 판사는 악명높은 보이파통과 세보켕 대학살, 공산당 지도자 크리스 하니의 암살등을 포함한 정치 폭력사건 조사 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골드스톤 위원회로 알려지게 됩니다. 이로써 그는 국내외적으로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되지만, 또한 쇠잔해 가는 인종차별 법과 정책의 수호자들로부터 살해 협박과 증오서신도 받게 됩니다.

그의 헌법재판소 동료 판사 알비 삭스씨는, 미국의 소리에게 골드스톤 판사는 인종 차별 시대에 정부가 인종차별 법과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리차드 골드스톤 판사는, 인종 차별주의 하에서의 판사 시절에, 모든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는 정직하고 위엄있는 판사는 어떤 극단적 상황에서도 인간 존엄에 대한 존중과 법적 타당성이라는 개념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이래 골드스톤 판사는 인종 차별시대에 살아남은 소위 과거의 최선의 전통과 오늘날 남아공화국을 지배하는 헌법의 새시대를 연결하는 정신을 대표한다고 삭스 판사는 말했습니다. 전 케이프타운 성공회의 데즈몬드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화국에서의 평화적인 정권교체에 골드스톤 판사의 기여는 필수적인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국제적으로 골드스톤 판사는 전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 유엔 전범 재판소의 초대 수석 검사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골드스톤 판사는 남아공화국 국영 라디오와의 대담에서 그 일은 막중한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골드스톤 판사는 이제 남아공화국 헌법재판소를 떠나지만, 그는 은퇴 후 아무 일도 하지 않지는 않을 것입니다. 골드스톤 판사는 뉴욕시의 두 대학교에서 일년간 교편을 잡으며, 요하네스버그의 위트워터스랜드 대학교의 총장직을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골드스톤 판사는, 학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바라고 있으나 , 그가 항상 모국이라고 말하는 남아공화국으로 반드시 되돌아올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