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48년의 아랍-이스라엘 전쟁이후 이웃 요르단과 시리아및 레바논은 물론,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 지구에는 수백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영구적으로 이주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3대를 거치면서 고향땅으로 돌아가리라는 꿈을 간직해 왔지만 옵서버들이 전망하고 있듯이 이들의 귀향은 실현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VOA 기자가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있는 난민 수용소를 찾아 이들의 생활상을 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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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 모하메드 함단]씨는 [야발 엘 후세인 난민 수용소]가 처음 설치되던 당시를 기억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용소 주민중 한 사람입니다. 이 수용소에 도착하던 당시에 함단씨는 18살이었고 막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이제는 17명의 자녀들과 그 보다 더 많은 손자 손녀들을 두게된 70대의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함단씨는 길가에서 야채를 파는 노점 앞에 서서 처음 이곳에 정착 하던 당시에 이 지역의 모습을 설명했습니다.

함단씨는 그 때에는 천막들을 쳐놓은 천막촌에 불과했다며 사정은 매우 나빴다고 회상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서 [야발 엘 후세인 수용소]는 암만시의 저소득층이 사는 이웃 지역들과 비교해도 거의 구별이 되지 않게 발전됐습니다. 천막들은 사라진지 오래고 그 자리에는 시멘트로 된 건물들이 들어 서고 더러는 여러 층의 높은 건물들도 눈에 띄게 됐습니다.

유엔 난민 담당 고등 판무관실에서 파견된 [마타르 사케르] 대변인은 팔레스타인인들은 처음에도 이 지역에 와서 빈둥거리며 유엔기관에서 주는 원조품에만 의존할수 없었다면서 일을 열심히 하고 아이들의 교육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습니다.

사케르 씨는 자신도 이 난민촌의 천막속에서 태어났다면서 철이 들면서 자신이 난민임을 알게됐다고 말했습니다. 사케르씨는 “너는 빨리 자라서 식구를 살리고 대학도 다녀야 하며 새 집을 구입하도록 도와야하고 빨리 천막촌을 떠나서 보다 나은 삶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어렸을 때 부모님들이 자신의 머리에 끊임없이 주입 시키려고 했던 말들이었다고 상기시켰습니다.

[자발 엘 후세인 수용소]에서 살고 있는 한 주민은 난민촌 생활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위해 방문객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아케이드] 라고만 밝힌 이 주민은 7명이나 되는 자신의 자녀들이 모두 대학교나 지역사회 대학을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아케이드씨는 부지런히 일했으며 자녀들중 4명은 교사이고 한명은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많은 난민들에게 있어서 가족을 돕는다는 것은 유럽과 미국 또는 석유가 많이 나는 페르샤만의 부자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아 그곳에서 돈을 벌어 집으로 송금을 하기위해 요르단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케이드씨의 가족들도 그 점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아케이드씨는 딸들과 함께 결혼식을 준비 하느라 집안 청소로 한창 분주했습니다. 막내 딸이 결혼을 하게돼 이 큰 집안 행사를 위해 자녀들 대부분이 돌아와 집안은 온통 손자와 손녀들로 들끓었습니다.

요르단에는 다른 어느 지역 보다도 많은 어림잡아도 17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중 약 20%가 야발 엘 후세인 수용소에서 살고 있어서 이곳이 2만 7천명 이상의 난민들 에게는 본고장이 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난민촌의 생활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아케이드씨는 다른 주민들과 비교할 때 비교적 잘 사는 편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케이드씨의 며느리가 되는 [라일라 하메드 샤하다]씨는 50년이 넘은 뒤에도 난민 수용소가 계속 존속될 것이냐 하는 점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에 관련된 정치판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 니다.

샤하다씨는 난민 수용소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난민촌을 지키며 사는 것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추구하는 대의가 세계의 주시를 받는 토론 의제로 남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 머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지금은 이스라엘 국가 속에 들어가 있는 자신들의 조상이 지켰던 땅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협상 대표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연고지로 귀환 할수 있는 권리를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핵심 요소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스라엘 영토가 아닌 상호 협상된 팔레스타인 국가에 정착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 권리는 중동평화협상을 계속 가로막아온 난제중의 하납니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1진을 형성하게 만든 1948년의 아랍- 이스라엘 전쟁이후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시민으로 받아들인 유일한 나라가 되어왔으며 대부분의 아랍나라들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거주지역을 제한해서 살도록 허용해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수백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몰려들면 자신들의 생존에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안보에 위협이 되고 유태인의 국가성격을 파괴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지역에 산재해 수세대를 살아오면서 난민으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은 형식상 나라가 없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야발 엘 후세인 수용소에서 아케이드씨는 기억하기 어려운 2살때 떠나온 팔레스타인 고향땅을 계속해서 가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아케이드씨는 사람들이 이곳을 고향이라고 부르면서도 그들의 마음 속에는 팔레스탈인이 본고향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 니다. 아케이드씨는 남편과 함께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자신들이 사는 집을 지었으며 아이들을 교육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사는 집의 벽들은 예루살렘의 회교 성지를 상징하는 넓게 모자이크 된 둥근 도움형의 돌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아케이드씨의 가족들도 그동안 열심히 일하며 이룩한 자신들의 삶을 뒤로하고 언젠가는 조상들의 땅이 있는 예루살렘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 가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