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은 간첩 교육 목적으로 수 십년전에 북한으로 납치됐던 일본인 5명의 처리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 일본인 피랍자는 6개월 전에 북한의 허용에 따라 납치된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현재까지 그대로 머물고 있습니다. 도꾜측은 이들의 북한 귀환을 거부했고, 평양측은 이들의 가족이 일본을 방문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관영 조선 중앙 통신은 일본측이 이들 피납자들을 가족과 떼어놓고 있다고 비난하고, 그들을 영구 귀국시키기로 한 도꾜측의 결정을 비극이라고 규탄했습니다.

중앙 통신은 그러나 북한에 남아 있는 피랍자 가족들이 일본에서 부모 형제와 상봉하도록 허용하라는 도꾜측의 요청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바로 작년 9월에야 비로소 간첩들에게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북한 공작원들이 1970년대와 80년대에 10여명에 이르는 일본인을 납치했었음을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평양측은 아직 살아 있다고 밝힌 5명의 피랍자에게 지난 해 10월 일본을 잠시 방문하도록 허용했습니다.

평양측의 이같은 조치는 일본과의 정식 외교 관계수립에 있어서 주요 걸림돌이 되고있는 이 마지막 장애물이 제거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양국간의 관계에는 또다시 암운이 드리워 졌습니다. 이번에는 북한의 핵 확산방지 조약 위반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들 피랍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시련이 방관된 채 북한에 두고온 가족들과 다시는 재 결합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인 소가 히토미(43세,여)씨는 고향인 사또가시마 섬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에 두고 온 남편과 두 딸을 늘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가 여인은 고향 방문으로 시작된 여행이 이젠 자신이 집에서 도망친 것으로 일부에선 볼지도 모르는 현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렵다고 말합니다. 소가씨는 일본 정부에 대해 가족과 다시 결합할 수 있도록 가시적인 행동을 취하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소가씨는 지난 1978년 어머니와 식료품들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함께 납치됐으며, 어머니의 생사는 아직 모릅니다.

그밖에 북한측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다른 일본인 피랍자들의 행방과 관련해, 북한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 왔다고 말하고, 일본측이 피랍자들의 사망을 받아들이기 거부하고 있음을 가리켜 이른바 “정신적인 촌스러움”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