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일거에 함락시키자 중동의 일부 군사 분석가들은 실패로 끝난 사담 후세인의 바그다드 방어 전략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세인의 수도 방어 전략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던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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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미군이 바그다드 중심부로 진격해 들어오자 바그다드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환호했습니다. 이들은 사담 후세인의 초상화와 동상들을 훼손하고 정부 청사들을 약탈했습니다. 수도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의 통제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음이 텔레비전 화면에 생생하게 비쳐지자, 미군 주도의 연합군을 격퇴시킬것이라고 그토록 장담해온 사담이 어째서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는지가 즉각 분석대에 올랐습니다.

이집트 육군 장성 출신으로 현재 카이로 소재 “군 전략 연구소”의 소장인 모하매드 소와일람씨는 사담 후세인의 전략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를 통해 전쟁을 예방하자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사담에게는 아무런 군사 전략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는 꿈을 꾸면서 환상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사담과 집권 바트당에게는 아무런 전략도 아무런 전술도 없었으며, 거짓말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환상이었습니다.”

역시 이집트 육군 장성 출신으로 현재 카이로에 있는 “알 아람 정치 전략 연구소”의 군사 분야 연구를 이끌고있는 모하매드 카드리 사이드씨는, 사담이 분명 군사 전략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믿는다고 말하고 그러나 그 전략은 일반적인 지원을 그렇게 많이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사담은 전략을 갖고 있었으나, 이 전략을 뒷받침하는 힘이 미약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3주만에 허물어졌습니다. 그는 그의 주위 국가들로부터 고립되었고, 보급선도 없었습니다. 또한 사담과 이라크인들간에 얼마간의 불신이 존재했던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이드씨는, 이라크측의 실패한 군사 전략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바로 “대단히 훌륭한”연합군측의 전략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연합군은 처음부터 수도 공략에 착수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통신 기능을 파괴했고 통제 수단을 마비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전쟁 끝내기 전술도 아주 훌륭했다고 봅니다. 연합군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공군력을 동원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이러한 공군력을 지상군과 결합시켰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목표로 삼았고 조그만 목표물들도 공격해, 도처에 구멍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몸체가 와해된 것입니다.”

사이드씨는, 사담의 이른바 “최후의 발악”이 연합군에게 상당한 손실을 안겨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군 전략 연구소의 소와일람 소장은 사이드씨의 견해에 반드시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담이 죽지 않는 한 이 시나리오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는 이러한 대량 살상 무기가 발견될것으로 보며 확실히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우려하는 것은 사담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그것을 최후 순간에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일부 분석가들은, 사담이 살아있고 누군가가 그의 명령을 따를 경우 그로서는 연합군에게 또 한차례 놀라움을 안겨주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연합군이 이미 바그다드로부터 이동해 사담의 고향이자 거점인 티크리트를 공격하고있는 이유가 바로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이라크인들을 군림하던 사담의 권력이 종말을 고했던 9일 바그다드에서 환희에 찬 축제를 벌이던 이라크인들에게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