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교회는 다양한 문화 활동과 사회 봉사 활동에도 힘을 썼는데, 한국의 국악, 춤, 가요 등이 한인교회를 통해 젊은 세대를 비롯한 한인 사회에 소개됐습니다.

또한 샌프란시코에서는 교회가 중심이 되어 1909년 최초의 한글 주간 신문인 ‘신한 민보’가 발행됐습니다. 한인들은 가정적인 문제부터 직장에서의 어려움까지 언제나 목사들을 먼저 찾아가 의논했고 유학생들도 여러가지 어려움과 고민을 털어 놓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한인 교회가 단순한 종교의 차원을 넘어 정치, 사회적인 활동의 본거지가 되어간것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였습니다.

특히 1910년부터 1928년까지 한인감리교회에서 목사로 재직했던 이대위 목사는 ‘신한민보’의 편집인으로 활동했으며 평생을 한인국민회의 지도자로 헌신했습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한인들에게 항상 열려있는 문, 그것이 초기 한인 교회의 모습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