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본토로 이주해 오는 사람들은 신체 검사와 이민국 예치금이라는 두가지 관문을 겪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한국에서 기독교계 학교의 의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드류 박사가 한인들의 신체검사를 담당했으며, 공립협회가 한인 이주자들의 예치금 보증을 서주면서 한인들의 본토 이주는 순조롭게 이루어질수 있었습니다.

1910년경부터 한인 이주자들이 많이 모여 든 곳은 로스 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210마일 떨어진 다뉴바와 리들리였습니다. 비록 극심한 인종차별과 비인격적인 대우로 한많은 세월을 산 농장 일꾼의 처지였지만, 한인 본토 이주자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상해 임시 정부로 독립자금을 보냈고 국민회의에 기부금을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한인들은 유타주나 와이오밍주에서 광산일을 하거나 아리조나주의 철도부설 작업에 참여했고, 그리고 로스앤 젤레스와 같은 도시에서는 막일에 종사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오렌지를 따기 위해 리버사이드의 농장 지대로 들어갔습니다.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에 붙여져 있던 도산 안창호에 의해 쓰여진 작업 지침을 보면 근면성과 정직성을 중요시하던 한인 노동자들의 마음가짐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들의 유일한 자본은 정직밖에 없다. 주인이 보든 안 보든 빈둥거리지 말고 열심히 일하자. 그대가 정직하게 일하면 주인은 그대를 믿게 될 것이며, 그대의 동포인 김 아무개, 박 아무개, 이 아무개도 일자리를 얻을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면 결국 모든 한인은 언제 어디서라도 일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