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출신 재일동포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건너갔던 일본인 처 한 명이 중국을 통한 힘겨운 여행 끝에 지난 달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여성이 겪은 고통은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수 십년 전 배우자를 따라 북한으로 건너갔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꿈이 환상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 수 천명의 다른 일본인 처들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북한에서 40년 이상을 보낸 후 지난 1월 고국 일본으로 돌아간 이 일본 여성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합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건너간 다른 수 천명의 일본인 처들도 아마 그와 유사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구호 요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도쿄에 있는 구호 단체 [북한 난민 생명 기금(Life Funds for North Korean Refugees)]의 나카다이라 켄키치 씨는 최근 일본으로 돌아 온 일본인 처의 이야기는 비슷한 곤경을 겪고 있는 다른 더 많은 일본인 처들이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면서, 그 일본인 여성은 북한에 있는 다른 일본인 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고국으로 돌아간 이 일본인 처는 올해 64세로 북한에서 살기 위해 지난 1950년대에 남편과 함께 북한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들은 당시 김일성 정부가 수립했던 송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북한에 갔습니다. 당시 북한 정권은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일본의 한반도 식민통치 시기에 강제로 끌려 온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1959년과 1985년 사이에 약 9만 3천명의 한인이 약 2천명의 일본인 배우자 및 약 5천명의 자녀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북한으로 갔습니다.

이 일본인 처의 남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공산주의 낙원을 믿었고, 북한이 먹을 것과 일자리가 풍부한 안정적이고 만족할 만한 생활을 제공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도착한 지 10년 후에 남편이 정치범으로 체포됐다고, 최근 고국으로 돌아온 이 일본인 처는 밝혔습니다.

이 일본인 처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후 다시는 남편 소식을 듣지 못했고, 혼자서 두 자녀를 키울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일본인 처는 평양에서 중국 국경 근처의 가난한 마을로 쫓겨 났으며, 숲 속에서 땔나무와 나물을 수집한 후 시장에 팔아서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수 없이 많은 다른 북한 주민들처럼 가난에 쪼들렸습니다. 이 여성은 자녀들과 함께 감자와 옥수수 가루로 연명했고, 쌀은 오직 명절날에만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해 11월 이 여성은 남한 인도주의 구호요원 2명의 도움을 받아 맨발로 강을 건너 중국 국경을 넘었습니다.

많은 탈북자들도 그같은 경로를 통해 중국으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중국을 거쳐 자신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할 제3국으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다른 수 많은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여성은 경찰을 피해 중국의 시골 지방들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과 일자리를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여성은 한 일본 구호 단체의 도움으로 마침내 일본 외무성에 편지를 보낼 수 있었고, 일본 외무성은 중국 정부와의 협상을 중재했습니다. 이 여성은 지난 1월말 무사히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이 여성의 사례를 통해 일본 정부는 북송 일본인 처의 귀국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 관리들은 익명을 전제로, 일본 외무성은 그와 유사한 상황에 있는 다른 수 십명의 일본인 처들에게 비밀리에 도움과 보호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중국과의 외교 분쟁을 촉발할 수도 있고, 이미 긴장 관계에 빠진 북한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일본과 북한은 아직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970년대와 80년대에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했으며 최근에는 일본 정부가 북한의 무기 개발 계획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일본 구호 단체들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북한에 남아 있는 일본 여성들, 어쩌면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절실히 바랄지도 모르는 이 여성들을 위해 일본 정부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리야마 마유미 법무장관은 일본 정부는 일본인 처들을 돕기 위한 새로운 법과 절차를 고려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당분간 그들의 문제는 현행 법 체계 속에서 검토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일본으로 돌아간 여성들은 모두 중국외에도 러시아와 태국 등 제 3국을 통해 북한으로 부터 일본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구호 요원 나카다이라 씨는 인도주의 단체들이 북한을 떠나기를 원하는 일본인 처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카다이라 씨는 일본 내 가족들로부터 신청을 받고 있으며 아직도 북한에 있는 일본인 여성들이 중국으로 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돈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현지인들의 도움속에 일본 여성들은 고국으로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수 천명의 일본인 처들의 운명은 아직 불확실합니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전직 북한 간첩은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인 여성의 30퍼센트가 기아와 질병, 그밖의 다른 어려움으로 이미 사망했다고 일본 정부에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의 기아가 최악이었던 지난 1990년대 중반에 많은 사람들이 숨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국 방문을 요청했던 일단의 여성들이 북한 당국에 의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고, 일부는 석방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달 고국으로 돌아간 일본인 처는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이 여성의 귀환은 외교적 승리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갈 정보나 수단도 갖지 못한 채 자신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북한에 갇혀 있을 수도 있는 다른 수 많은 일본인 처들에 대한 우려도 고조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