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의 대화를 옹호하는 인권 변호사 출신 노무현 후보가 근소한 표 차로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집권 새 천년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19일 투표가 완료된지 몇시간 만에 대통령 당선자로 선언됐습니다. 그의 경선자였던 한나라 당의 보수파 야당 지도자 이회창 후보는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서울의 당 청사에서의 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한국인들에게 감사하고, 대화와 화합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패배한 이회창 후보는, 선거 패배에 대해 사죄했습니다.

분석가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가 대 북한 관계에 대한 국민 투표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김대중 현 대통령의 이른바 햇볕 정책을 지지하며, 이회창 후보는 북한에 대한 더욱 강력한 자세를 취했었습니다.

19일의 투표는, 지난 6월 여중생 두명을 숨지게 한 두명의 미군 병사들이 최근 무죄 방면된 것으로 인해 반미 감정이 치솟는 가운데 치루어 졌습니다.

노무현씨는, 1980년대 군사 정부때 반역죄로 기소된 학생들을 변호하는 인권 변호사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남한 동남부 농민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금년 56세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고등학교 이상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야간 독학으로 사법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1980년대에, 당시의 군사 독재자 전두환 정권에 도전하는 사건들을 맡음으로써 명성을 얻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1987년 조선소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한 혐의로, 체포되고 변호사 자격을 정지 당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1988년 부산에서 친 민주주의 정치인으로 국회 의원에 당선될 때까지, 압제받는 사람들의 변호를 계속했습니다. 초선 국회 의원으로, 그는 전두환 정권의 과거 범죄를 조사하는 법사 위원으로 신문에 대서 특필되곤 했습니다.

1990년대 초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남한 주둔 미군 철수 요구 청원서에 서명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는 이 같은 자세를 완화했습니다. 그는 이제, 3만 7천 주한 미군에 대해 한국 법원이 더 많은 관할권을 가지도록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을 개정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