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1930년 대 대공황기는 미국 전역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빈곤과 혼란에 빠져 있던 시기였으며 특히 중남부 지역의 오클라호마 주와 텍사스 주의 빈곤과 혼란상은 더욱 심했습니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수 없게 된 농민들과 그 가족들은 서부지역 농장에서 품을 팔기 위해 고향을 버리고 캘리포니아주로 떠나야 했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박물관” 에서는 미국의 대공황기에 캘리포니아주 농장에서 품팔이로 하루 하루를 연명해 갔던 유민들의 삶의 현장을 모은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

미국의 대공황기에 캘리포니아주의 농장에서 품팔이로 생계를 간신히 이어갔던 유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 전시회에서는 당시 이들의 암울했던 생활상을 묘사한 우디거스리(Woody Guthrie) 라는 컨트리 송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가뭄속에 세찬 폭풍이 불어 검은 흙먼지를 하늘을 뒤덮네, 나는 포드 자동차 한대에 농장을 포기한채 휘발유를 가득채우고 꾸불꾸불 험한 산길을 덜컹거리며 서부로 떠나가네" 라는 내용의 노래 가사는 전시된 사진들과 함께 대공황기 유민들의 고난을 피부로 전해줍니다.

도로티우 랭 과 호레이스 브리스톨이라는 두 사진 작가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품팔이로 연명했던 유민들의 고달펐던 삶을 사진들 속에 담아 전달합니다. 이 전시회는 이중의 고난을 겪은 유민들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수 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빈곤에 빠져 허덕였습니다. 그런데다가 텍사스주와 오클라호마주, 아칸소주의 비옥했던 농토는 오랜 가뭄이 휩쓸어 먼지 바람만 세차게 부는 황진지대로 변했습니다.

게티 박물관의 대공황기 캘리포니아주 유민 사진 전시회 관리자인 쥬디 켈러 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텍사스주와 오클라호마주, 아칸소주는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주들이었습니다. 경제 공황 탓만이 아니라 중남부 지역 농업지대에 몰아닥친 전례없는 혹심한 가뭄이 오랫동안 계속된 탓으로 비옥했던 농토는 먼지 벌판으로 변하고 말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진 작가 도로티우 랭은 당시 연방정부의 위촉으로 대공황속에 먼지 벌판으로 변한 농토를 버리고 캘리포니아주로 떠나 갔던 유민들의 생활상을 다큐멘타리 사진으로 엮어내게 됐다고 켈러 씨는 설명합니다.

“이번 사진 전시회에서는 유민들이 가재 도구들을 잔뜻 싣고 고향을 떠나 왔던 유민들의 고물 자동차들을 비롯해 유민들의 가족과 어려움속에서도 가족들을 보살펴야 했던 여성들이 겪은 참담했던 여정 그리고 캘리포니아주에 도착한 후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다큐멘타리로 엮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대공황기 사진전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장면은 유민들의 천막안에서 어린 두 아이들을 달래는 모습을 담은 “유민 어머니”라는 제목의 사진입니다. 사진 속의 두 어린이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운 모습이고 어머니는 근심 걱정으로 극도로 피곤에 지친표정입니다. 그러면서도 여인은 결의에 찬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사진의 주인공, 유민 어머니는 체로키 인디언 여성 플로렌스 톰슨이었다고 쥬디 켈러씨는 설명합니다.

“플로렌스 톰슨 여인은 실제로 아주 잘생긴 모습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아랫턱 윤곽은 대단히 뚜렷하고 두드러진 광대뼈와 턱은 매우 결의에 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느끼기엔 이 여인의 얼굴에는 남성과 여성의 두 모습이 함께 담겨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쥬디 켈러 씨는 플로렌스 톰슨 여인의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도 남성과 여성의 표정을 모두 담고 있다는 사실이 부분적인 이유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플로렌스 톰슨 여인의 모습을 담은 이 한 장의 사진은 수 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농촌과 도시에서 고난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대공황기의 암울했던 실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고전적인 사진이 됐습니다.

게티 박물관의 대공황기 캘리포니아주 유민 사진 전시회에는 도로티아 랭의 작품 80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사진들 가운데는 도로티아 랭의 첫 남편으로 화가인 메이너드 딕슨 씨의 사진과 도로티아 랭이 두 번째 남편 자녀들과 함께 아시아를 여행했을 때 찍은 사진들도 있습니다.

사진작가 호레이스 브리스톨 씨의 사진들은 도로티아 랭 사진 전시회에 찬조 작품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브리스톨 씨는 1937년과 1938년에 캘리포니아주 중부 농촌지역을 찾아 다니며 촬영했습니다. 브리스톨 씨는 대공황기 소설 “분노의 포도” 작가 죤 스타인벡과 함께 유민들의 농장 천막촌 생활상을 다규멘타리 사진으로 남기려고 계획했었습니다.

작가 스타인벡은 당시 잡지에 낼 글을 준비중이었고 브리스톨 씨는 다큐멘타리 사진을 제공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마음을 바꾸어 소설을 집필했으며 1939년에 출판된 “분노의 포도”는 불후의 명작으로 알려지게 된 소설입니다. 죤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나중에 죤 포드 감독, 헨리 폰다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사진작가 호레이스 브리스톨 씨의 사진들은 이 영화 제작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쥬디 켈러 씨는 설명합니다. “브리스톨씨의 사진작품들은 잡지들에 실렸을 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자들이 대공황기를 소재로하는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출연자 선정과 의상을 포함한 미술 분야에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소재 “게티 박물관”의 대공황기 캘리포니아주 유민 사진 전시회는 내년 2월까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