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11 테러사태는, 미국인들을 일깨워준 일종의 경종인 것으로 불리웠습니다. 그러나 테러사태 발생, 1년이 지나면서, 9.11사태는 서방문화의 지나친 지배에 대한 회교권의 과격한 반발이라는 시각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9.11사태의 배경요인과 그 성격에 대한 평가작업은 미국인들만의 몫은 아닙니다.

이 시간에는 뉴욕 만하탄에 소재한 쿠퍼 유니온 대학 역사학교수인 [프레드 씨갈]씨를 모시고, 9.11 테러공격을 자행한 사우디 아라비아인 젊은이들과 같은 나이의 외국인 회교도 학생들의 반응을 들어봅니다. 회교도 수강 학생들의 많은 수는 회교권이 현대적 발전을 이룩하지 못한 것은 회교의 교리를 충실히 따르지 못한데 대한 신의 처벌로 배웠음을 지적한다고 씨갈교수는 지적했습니다. 시갈교수는 그러나 이제 회교권 출신 학생들은 점차 새로운 시각에서 그 원인을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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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갈 교수님께서는 학생들과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어 나가십니까?

“ 저는 9.11 테러사태에 관한 수업시간에 가능하면 학생들을 토론에 참여하도록 유도합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상황이 벌어졌고 그런 일이 벌어진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째서 서방세계는 현재 우리가 보는 것 처럼 발전을 했고 어떻게 해서 회교권을 능가하게 됐는가 하는 등등의 의문을 저는 제기합니다. 우리가 15세기의 세계를 돌아다 보고 발전 문화권의 단계를 순서 대로 꼽아 본다면 중국, 오토만 제국, 그리고 그 다음에야 서유럽이 될 것입니다. 15세기와 16세기에 서유럽 쪽에 무슨 일들이 생겨 그런 변화를 가져오게 했을까, 사람들에게 그런 문제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수도 있습니다.”

시갈 교수께서는 회교권이 현대 세계의 발전에 보조를 같이 하지 못한 것이 회교의 팽창주의 입장을 고수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시는지 , 아니면 회교권 국가들이 퇴보적 정권들의 치하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보시는 지요?

“제가 회교권에서 온 그 학생들 모두를 대변할수는 없지만 일부 학생들은 현대성을 무조건 거부한 것이 실책이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터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터키는 현대 세계를 회교문화권에 적응시키려는 노력을 가장 많이 기울인 나라였기 때문에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그래서 그점이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그 학생들이 온 나라에서는 토론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폐쇄적이고 은자의 침묵이 요구되는 그런 분위기가 있습니다.

물론 정권에 대한 비판은 금물입니다. 그래서 유일한 비판대상은, 미국인들과 유태인들 뿐입니다. 중동의 비극은 서방세계의 가치관중, 법치 또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진보주의나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고 그 대신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교국가들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 질것으로 보시는 지요?

“상당히 어려운 이야깁니다. 제가 낙관론자 입장에서 말한다면 부분적으로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들리지 않겠지만 서방의 문화적 관념을 침투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폐쇄된 사회들을 개방시켜서 외부의 영향들을 받게 하면 적응과정은 빨라질 수 있습니다. 매우 어려운 과정이 돼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꾸준하게 우리가 지닌 한계성도 이해하고 서방 문화의 덕목을 이해하도록 하며 서방세계의 기본 가치관을 타협하지 말고 강력히 밀고 나가는 입장을 견지 해야 합니다.”

서방세계의 덕목에 관해서라면 질문을 해야겠는 데요 미국의 덕목이 테러공격을 부른 것입니까? 미국이 회교권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것이 든 반발을 받을 이유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난 10여년동안의 역사를 보면 미국은 회교도들을 위해 이들이 감사하게 여기든, 여기지 않든 간에 보스니아에서, 코소보에서, 또는 소말리아에서 되풀이 여러 차례 개입했습니다. 증오심은 흔히 비합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증오심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9.11사태 1년이 지난 오늘 테러공격의 배후 동기를 미국이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인들의 이해도가 호전되고 있습니까?

“이해를 한다고 봅니다. 저마다 책들을 구해 읽으면서 회교권에 관해 서둘러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삼가해야 하는 것은 과잉 반응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인들은 과잉반응을 보이지 않은 점을 흔쾌히 긍정적 측면으로 지적할수 있습니다. 회교도 계통의 미국인들에 대한 탄압도 없었습니다. 더러 외딴 지역에서 사고가 있긴 했지만 미국인들은 처신을 잘 해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방세계는 회교에 반대하는 것으로 회교도들에게 비쳐지지 않으면서 회교 과격주의에 반기를 들수 있다고 보십니까?

“어려움은 따를 것입니다. 자칫하면 미국의 행동은 웃음꺼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보스니아와 코소보전쟁에서 회교도들을 대신해 미국이 싸운 일이 외면당했던 것처럼, 회교 과격주의와 회교를 분리시키기는 매우 어렵고 쉽게 외면당할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