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제 대부분의 학교들이 문을 열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학생들이 지식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가족을 부양하는 데 도움을 줄 기술까지 배우고 있습니 다. 미국의 소리 기자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시에 있는 한 학교를 찾아가 이곳 학교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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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시에 있는 ‘잠 호리앗’ 직업학교에는 사용할만한 비품이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책상도 교과서도 없습니다. 물론 펜과 종이도 제대로 공급 되지 않고 있습니다. 교실에는 많은 창문들이 없어지고 대신에 찢겨진 플라스틱 판자가 붙여져서 찬 바람이 새어들고 있 습니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사용되는 비품들은 너무 빈약했습니다. 그러나 전쟁과 내란 또는 억압통치 마저도 이곳 아프간 여성들의 꿈을 말살할수는 없었습니다.

‘시디카 랑’이라는 이름의 어린 여학생이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싶다고 말하자 다른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뒤따라 자신들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은행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 학생도 있고, 의사가 되겠다고 말하는 핵생도 있습니다. 유능한 교사가 되어서 국민 교육을 돕겠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꿈들은 여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이나 훈련의 기회를 주지 못하도록 금지했던 탈레반의 혹독한 통치하에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잠 호리앗’직업학교 학생들은 전통적인 교과과정은 물론이고 실용적인 직업 기술도 배우고 있습니다. 이 학교의 교사진은 양재, 수예, 회계 그리고 장부정리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어와 독일어를 배우는 교실도 개설돼 있습니다.

‘잠 호리앗’직업학교는 지난 1960년대에 독일에서 보낸 기금으로 지어졌습니다. 기자가 찾아간 이날 특별히 이 학교에는 지난 1979년까지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나이 많은 독일 여성이 23년간이나 떠나 있다가 다시 이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루딜드 마이어 외메’라는 이름의 독일인 여교사는 독일어를 가르치기 위한 기초 학습용 카드들을 손에 든채, 과거에 있었던 이 학교의 상황을 회고했습니다.

물론 학교는 그 당시에 훨씬 더 좋은 상황이었다면서, 이 학교에서는 2천명의 학생들이 공부했다고 이 독일인 교사는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역시 교사로 있는 ‘하피자 대니쉬’씨는 자기에게서 회계학과 경제학을 배우고 졸업한 많은 젊은 학생들이 훌륭한 직업들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옛날에 중앙은행에 가게되면 대부분 이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을 흔히 볼수 있었습니다. 각부서의 일부 책임자들도 이곳 ‘잠호리앗’ 직업학교 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은행을 방문할 때는 이학교 출신들이 너무 많아서 잠호리앗 직업학교에 와 있는듯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

그러나 이제 그 은행에는 지불준비용 현금도 떨어지고 한때 자랑스럽던 이 학교 졸업생들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호리앗’직업학교에는 겨우 30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탈레반세력이 집권하면서 이들은 여학생들과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추방하고 회교 교리를 가르치는 남학생 유일의 종교학교로 전환시켰습니다. 교사들은 조금이나마 가진 물건들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재봉틀 같이 여성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물건들은 약탈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모든 학교들 처럼 이 학교도 외부의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과 교사들은 이제 조금씩 정착해 가고 있습니다. 독일인 교사 ‘마이어 외메’씨는 이 학교를 복구하는데 독일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마도 신세대의 아프간 젊은 여성들이 국가 재건을 위해 새로운 일익을 맡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