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주석이 펼쳤던 파멸적인 정치운동 탓으로 무수한 중국 인민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여기고 있지만 또 다른 많은 중국인들은 고 주석을 아직도 숭배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 중국의 고 주석 숭배에 관해 미국의 소리 베이징 특파원은 다음과 같은 보도를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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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의 시신은 베이징 광장에 있는 영묘에 방부처리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묘 밖에는 매일같이 아침이면 고 시신을 보려고 중국 전역으로부터 찾아온 수 많은 중국인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광경을 볼수 있습니다. 영묘안의 동굴같은 홀에 들어가 보면 컴퓨터화된 장치에 방문자 숫자가 표시되고 있습니다. 오전 10시 정각 현재 8,550명이 영묘안에 들어온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동굴같은 홀을 지나 막다른 곳에 있는 작은 방에 고 주석의 시신이 유리관 속에 안치돼 있습니다. 시신위에는 붉은 기가 드리워져 있고 밀납이 씨워진 주석의 얼굴에 붉은 색이 도는 오렌지 빛 전등이 비추어져 있습니다. 방문자들이 주석의 시신을 바라보는 시간은 불과 몇초로 제한돼 있습니다. 영묘 후문에는 에 관한 기념품들이 가득히 진열돼 있고 방문자들 마다 어김없이 기념품들을 챙겨갑니다.

중국 동북부 에서 왔다는 한 젊은 남자는 중화인민공화국 창건자를 직접 보는 것은 심오한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이 젊은이는 주석은 여전히 위대한 인물이라면서 그가 아니었더라면 중국이 오늘 날처럼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중국 공산당은 주석이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기에 걸쳐 일어났던 기간중에 심대한 과오를 범했다고 공식적으로 비판하는 평가를 내렸지만 그가 중국에 기여한 바는 그러한 과오를 훨씬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세계의 대부분은 을 압제자로 보고 있으며 이 일으킨 과 은 무수한 중국인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비판합니다. 의 통치아래 고난을 겪었다는 학식높은 60대 중반의 남자 방문객 씨는 그를 기억하는 것조차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항에서 왔다는 씨는 영묘 후문 밖에서 영묘 안에 들어간 스무 살 짜라 조카가 나오기를 지루하게 기다리면서 자신도 몇 해 전에 의 시신을 1970년대 말에 한 번 본적이 있지만 그때는 직장에서 강제로 올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씨는 자시의 생애에 이 수 많은 끔찍스러운 일들을 저질렀다고 회상합니다.

그러나 오늘 날에도 수 많은 중국인들에게 주석은 영웅적인 추앙을 받는 인물이며 모든 사람들이 평등했고 공익을 위해 불가능한 것들을 함께 달성해 냈던 시절의 상징 인물로 되어 있습니다. 21세기의 중국은 몇 십년 전에 비해 보다 풍요로워졌지는 몰라도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소득격차가 생기고 그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공직자들의 부정이 만연하는가 하면 경제개혁 탓으로 사회적인 대규모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이었다는 53세의 이라는 남자는 주석을 여전히 숭배하고 있다면서 25년전에 암기했던 어록의 구절들을 아직도 술술 외웁니다.

씨는 자신이 10대 시절에 열차 기관사로 일했을 당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는 구호를 외치며 전화를 받고는 했다고 회상합니다. 씨가 말하는 그 구호는 문화대혁명 당시 계급의 적들을 규탄하는 구호들 가운데 한 가지였습니다.

골동품 장사를 한다는 52세의 이라는 여자도 주석을 숭배한다면서 주석에 대한 공산당 찬가를 가장 좋아 한다고 말합니다.

이라는 이 여자는 주석이 아직도 중국의 지도자라면서 그는 중국 인민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고 칭송합니다. 여인은 어렸을 때 주석이 광장의 단상에서 연설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감격했었다고 회상합니다. 여인은 주석을 큰 소리로 칭송하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오늘 날의 중국 지도자들은 주석의 근처에도 못간다고 지적하면서 주석이 아직도 생존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엄청난 부패는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 합니다. 고 영묘을 찾아 온 방문자의 한 사람인 여인은 기자와 얘기를 마친뒤 들고 있던 녹음기로 찬가를 크게 틀어 보입니다.

라는 이 찬가의 구절은 오늘 날에도 거의 모든 중국인들의 가슴속에 간직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