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민권 제도 둘러싸고 논란 재연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누구나 시민권을 주고 있는 현행 제도를 두고 미국 정치권에서 또다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른바 ‘원정출산’ 문제가 언론의 지탄을 받으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요,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문) 먼저 미국의 독특한 시민권 제도부터 살펴보죠. 부모가 미국 시민이 아니라도 시민권을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에게는 자동적으로 시민권이 주어집니다. 외국 국적자들도 귀화절차를 거치면 시민권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부모가 시민권자일 경우에는 아기가 외국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시민권을 받게 됩니다.

문)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이 나오는 법적인 근거는 뭡니까?

답) 수정헌법 14조가 그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수정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했고 미국의 법적 관할권 아래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미국 시민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1868년에 채택된 이 조항은 원래 흑인들은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한 것이었는데, 외국인들에게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습니다.

문) 부모가 불법 이민자인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답) 현행 제도에서는 그 경우에도 아기는 미국 시민권을 받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자동으로 시민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민간연구소 ‘퓨 히스패닉 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8년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들의 8% 정도가 최소한 한 명의 불법이민자를 부모로 두고 있습니다.

문) 8%면 적은 수는 아니군요.

답) 네, 2008년에 미국에서4백3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이 가운데 34만 명이 불법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겁니다. 미국 성인 인구의 4% 정도가 불법 이민자로 추산되고 있는데요, 이들 중 상당수가 젊은 부부이고 자녀를 많이 낳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퓨 히스패닉 센터’는 분석했습니다.

문) 요즘에는 이른바 원정 출산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외국인 산모가 합법적으로 미국에 잠깐 방문해서 아기를 낳는 걸 말하죠. 엄마가 외국인이라도 아기는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역시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이 나옵니다. 미국 도착에서 산후조리까지 모든 과정을 돌봐주는 여행상품까지 있다고 합니다. 원정 출산으로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기는 한 해 수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문) 미국의 시민권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만 하겠네요.

답) 그렇습니다. 특히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은 시민권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린지 그래험 상원의원은 자식에게 미국 시민권을 얻어주기 위해 미국에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들과 관광객들이 미국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수정헌법 14조 개정안을 발의할 뜻을 내비쳤습니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 원내대표도 수정헌법 14조의 개정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공화당 의원들도 이 문제를 다룰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면서 논란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문) 수정헌법 14조가 개정될 가능성은 있습니까?

답) 사실 수정헌법 14조 개정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1990년대부터 시민권 제도를 고치자는 내용의 법안이 매년 의회에서 발의돼 왔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공화당의 거물 정치인들이 나서고 있어서 예년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기는 한데요, 헌법 개정은 워낙 논란이 많고 까다로운 문제라 이번에도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입니다.

문) 수정헌법 14조가 개정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뭡니까?

답) 시민권 제도를 바꾸면 결국 불법 이민자들을 양산하는 결과만 초래한다는 겁니다. 그보다는 불법 이민자들을 줄이는 게 목표가 돼야 하지 않냐는 거죠. 일부 보수단체들도 정치적으로 걸림돌이 많은 수정헌법 14조 개정을 추진하기 보다는 불법 입국을 철저히 막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문) 이 문제에 대해서 미국 국민들의 여론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답) 찬반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미국의 뉴스전문 방송인CNN의 여론조사를 보면, 수정헌법 14조 개정에 찬성하는 사람은 49%, 반대는 51%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난 1990년대부터 이어져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입장이 크게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예전과 비슷합니다. 보수성향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고 반대로 진보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시민권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