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베트남의 또 다른 전쟁 : 섬유산업 분규 - 2004-01-22

미국과 베트남은 사이공 함락과 오랜 쓰라린 베트남 전쟁 이후 단절된 지 거의 20여년만인 지난 1995년에 외교관계를 재수립했습니다.

18개월 전 두 나라는 베트남 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하는 댓가로 베트남 수출품에 대한 관세율을 대폭 낮추는 내용의 쌍무 무역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 협정은 베트남이 경제를 대규모로 진작시키기 위해 미국의 주요 경제품목들을 이용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기간산업인 직물류입니다. 이 협정은 정치 및 재계 지도자들과 공장 노동자들이 앞으로 과연 베트남이 새로운 무역 전쟁에서 미국의 아군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적군이 될 것인가 여부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요 이유이기도 합니다.

V-O-A 기자가 직접 베트남을 여행하며 베트남의 직물업이 미국 남부, 노스 캐롤라이나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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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싸움은 피흘리지 않고 벌이는 싸움이며, 아직까지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처럼 사망자는 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물 의류산업을 둘러싼 국제적인 주도권 싸움은 그 나름대로의 군대과 사상자와 싸움터를 갖고 있습니다.

직물 전선의 하나는 바로 인구 6백만의 베트남 최대의 도시로 한때 사이공으로 불리웠던 호치민 시입니다. 베트남의 발전하는 경제는 의류산업이 사람들의 손이 많이 필요한 노동집약적인 특성 때문에 직물산업 같은 분야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의류 공장 하나를 가동하면 세계에서 엄청난 수요를 가진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수백명의 일자리를 창출해 냅니다.

현재 호치민 시 북부의 빈 두옹 주에는 이같은 직물공장 수백개가 가동중입니다. 지난 2년 사이에 베트남의 직물및 의류회사들은 엄청난 양의 셔츠, 팬츠, 스웨터등을 수출함으로써 베트남을 세계 제 64위의 의류 수출국에서 제 6위로 끌어올렸습니다.

한국에서 이곳에 온 사업가 안씨는 “가장 중요한 점은 베트남 국민들이 교육을 잘 받았고, 근면하며 또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안 씨 부부는 미국의 JC 페니와 GAP에 의류를 수출하는 [보에텍 비나] 공장을 세우기 위해 2002년에 빈 두옹 주에 진출했습니다.

안씨는 공장 내부를 안내하며 “이곳은 셔츠와 팬츠를 짜는 제 1공장”이라고 설명합니다. 보에텍 공장에서는 현재 2천여명의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데, 이들의 한달 수입은 미화로 80불 정도입니다. 이같은 임금은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의 16분의 1 정도의 낮은 수준입니다. 이같이 싼 임금 덕분에 안 씨와 같은 수출업자들이 노스 캐롤라이나산 보다 해외의 주요 도매업자들에게 훨씬 싼 값에 수출할 수가 있습니다.

값싼 노동력 앞에 경쟁력을 상실한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회사들은 지난 10년 사이에 모두 8만 2천여명의 근로자들을 해고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호황을 맞고 있는 직물산업은 중대한 장애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2003년에 보에텍 공장에는 무서운 속도로 주문이 쇄도했습니다. 그러나 2003년말이 되면서 포장된 상자 더미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공장 복도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해 5월에 미국과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 기업들의 대미 수출량을 제한하는 직물 쿼타제에 합의했습니다. 이 쿼타제는 안 씨의 신생 회사가 한해동안 수출할 제품량의 생산을 이미 9월까지 모두 완료했음을 의미합니다.

금년 5월 1일부터 쿼타제가 시행되라라는 것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베트남에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 씨는 털어놓습니다. 19년동안 품질검사 일을 해온 구엔 티 반 양과 같은 보에텍 공장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구엔 양은 자기 집이 이 근방에 있기 때문에 이 공장에 취직했다고 말합니다. 구엔 양은 한주일에 엿새 자전거를 타고 공장에 출퇴근하며 이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최저수준인 하루 8시간씩 일하고 있습니다.

구엔 양은 집이 가난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열네살 때부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어느 곳의 공장에서나 이와 비슷한 얘기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민간기업이건 국영기업이건 간에 모두 베트남 정부로부터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베트남의 직물 근로자들을 동정하는 사람들을 별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한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고, 집을 잃고, 임대주택을 잃고, 아이들이 굶고 있는데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베트남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직물무역 전쟁의 여파로 미국에서는 파산 선고가 늘어나고 있으며, 기업의 해고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마이크 이슬리 주지사와 리차드 버 하원의원 같은 직물 로비스트와 옹호자들은 연방정부에 대해 외국산 제품의 홍수를 막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슬리 주지사는 베트남의 직물 수출에 대해 보다 엄격한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베트남과의 협정을 재협상해 줄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부쉬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한편, 노스 캐롤라이나의 직물업게는 여전히 직물무역 전쟁의 결과에 비관적입니다. 데이비 카운티의 작은 쿨우미 마을에서는 전에 직물 더미로 쌓여있던 주택이 이제는 한때 이 마을의 주요산업임을 보여주기 위한 직물 박물관으로 쓰고 있습니다. 한평생을 쿨우미 공장에서 일했던 페기 헬라드 여인은 과거를 돌아본 후에 최근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걱정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미국 정부가 일자리를 구하려면 모두 외국으로 나가라고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외국으로 옮겨가고, 여기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면 수입하는 물건을 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미국의 소비자들은 상가나 공판장에 가서 베트남제 의류를 사고 있습니다. 베트남과 미국간의 무역협정에 변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개선의 조짐은 보이지 않으며 앞으로도 직물 의류산업의 전쟁은 두 나라에 계속 많은 희생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