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뉴스] 이스라엘 역사를 점철했던 샤론 총리의 생애와 발자취

INTRO:
Israeli Prime Minister Ariel Sharon suffered a massive stroke and cerebral hemorrhage (Wednesday). His doctors say he is not expected to resume his duties and his political career appears to have ended. (OR He passed away at Jerusalem's Hadassah Hospital on ___, at the age of 77) . VOA's Carol Pearson reports Mr. Sharon's life and career spanned the entire history of the modern state of Israel.


NARRATOR:
Ariel Sharon was born in 1928 to Russian immigrant parents in the farming community of KFar Mala, north of the city of Tel Aviv. The modern state of Israel had not yet been created. Mr. Sharon would play an active role in that creation and in many of the defining moments of its history.

An ardent Zionist as a young man, he joined a Jewish militia with the aim of driving British forces from Palestine. In Israel's war of Independence in 1948, he was severely wounded in one eye in the battle to break the siege of Jerusalem.

Focusing on a military career, he earned a reputation as a fearless and innovative military commander, winning accolades in the 1967 Six-day War, for his command of an armored division.

In the 1973 Yom Kippur War he emerged as a brilliant military tactician leading Israeli troops across the Suez Canal to cut off Egypt's third Army.

NARRATOR:
Dennis Ross, a former U.S. negotiator in the Middle East, says the military shaped Mr. Sharon's political outlook.

DENNIS ROSS:
"He certainly came to believe that the only way peace would be possible would be for Israeli strength to be respected"

NARRATOR:
In 1973 Mr. Sharon turned to politics, and was elected to the Knesset, Israel's Parliament, on the conservative Likud Party ticket, a party he helped to form.
Philip Wilcox, President of the foundation for Middle East Peace, says Mr. Sharon's military prowess also provided his political legitimacy.

PHILIP WILCOX:
He was seen primarily as a man who could protect Israel's security. And that is at the heart of his popularity and leadership. He projected an image of strength and decisiveness, protecting Israel, and Israel not withstanding its great military power and success is a country that feels very insecure."

NARRATOR:
However while Mr. Sharon's military prowess boosted his political career, he also earned a reputation for recklessness and was rebuked on several occasions by his military commanders for his rash behavior . He also earned a reputation among Palestinians for brutality. He oversaw the occupation of Palestinian areas in the Gaza Strip and the West Bank when Israeli forces killed and detained thousands of Palestinians.

In 1982 as Defense Minister he organized and initiated Israel's invasion of Lebanon, leading an offensive against Yasser Arafat's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The invasion resulted in the massacre of hundreds of Palestinians in two refugee camps under Israeli control near Beirut. Michael Hudson directs the Center for Contemporary Arab Studies at Georgetown University in Washington DC

MICHAEL HUDSON:
"Sharon's involvement in the massacre of Palestinian refugees at Sabra and Shatilla, in which right wing Lebanese militias, but under the guns and apparently with the tolerance of the Israeli Army, massacred hundreds of Palestinians. This led really to his fall from grace."

NARRATOR:
Mr. Sharon was removed from office. An Israeli tribunal investigating the killings concluded that Mr. Sharon was indirectly responsible for them.

Mr. Sharon's political comeback began in 2000 after the so-called second Intifada or Palestinian uprising began following his controversial visit to the disputed Temple Mount or Haram Al Sharif. It is a site holy to both Jews and Muslims. The bloodshed resulting from the second Intifada led in part to the resignation of Prime Minister Ehud Barak and Mr. Sharon won an overwhelming victory in 2001, winning reelection in 2003.

In 2005 Mr. Sharon and Palestinian President Mahmoud Abbas announced a cease-fire and in October of 2005 Mr. Sharon completed the withdrawal of Israeli troops and settlers from the Gaza Strip, something he had once said he would never do.
Shukri Abed is Palestinian and a fellow at the Middle East Institute in Washington. He says Ariel Sharon was probably Israel's most hated figure among the Palestinians.

SHUKRI ABED:
"To say the least not trusted, and probably hated by many of them. Because of his strong positions, because of his building settlements, he was the father of building settlements."

NARRATOR:
In November of 2005, facing growing discontent in the ruling Likud Party over his decision to withdraw completely from the Gaza Strip, Mr. Sharon announced he was leaving the party, taking key allies with him to form a new centrist political movement called Kadima, or "forward" in Hebrew. Polls indicated Mr. Sharon was well on his way to winning a third term as prime minister.

Philip Wilcox says as a result of his unexpected exit Mr. Sharon's legacy is mixed.

PHILIP WILCOX:
"There are those Israelis who saw Sharon as//the man who would rescue Israel from a dangerous fateful adventure in occupation and settlement which was hurting Israel, which was the source of perpetual conflict and violence. And that is why people supported Sharon. There are others who thought Sharon had a much more narrow vision of the future and was not prepared to make peace."

NARRATOR:
In his breakaway speech from the Likud Party, Ariel Sharon said he would try and achieve Israel's final border with the Palestinians through negotiations - a task that is now left to his successor. But it is a task many now doubt can be achieved.
SIG OUT

[한글]

INTRO: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4일 광범위한 뇌졸증과 뇌출혈을 일으킨 후 병원에서 긴급수술을 받았습니다. 그의 의사들은 그가 다시 국정 업무를 재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그의 정치 생활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점철했던 그의 생애와 발자취를 알아봅니다.

NARRATOR:

아리엘 샤론은 1928년 텔아비브 북쪽 카르말라 농업공동체에서 러시아 이민 부모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아직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샤론은 그후 이스라엘의 건국과 이스라엘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젊었을 때 열렬한 시온주의자였던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영국군을 몰아내기 위해 유대인 민병대에 들어갔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때 그는 예루살렘 포위를 돌파하기 위한 전투에서 한쪽눈에 중상을 입었습니다.

군생활에 집중하면서 그는 1967년 6일전쟁때 기갑사단을 지휘하여 세운 전공으로 무공훈장을 받는 등, 대담하고 혁신적인 지휘관으로서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1973년 욤 키프르전쟁때 이집트의 제 3군을 차단하기 위한 수에즈운하 도하작전을 지휘해 화려한 군사 전술가로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NARRATO:

과거 중동 평화협상에서 미국 대표를 지낸 데니스 로스 씨는 이 같은 군 경험이 샤론의 정치적인 장래를 형성했다고 말합니다.

샤론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스라엘의 힘이 존중을 받도록 하는 것이라고 확실히 믿게 되었다고 로스 씨는 말합니다.

NARRATOR:

1973년 샤론은 정계에 투신하게 되고 그가 결성에 참여했던 보수적인 리쿠드당 티겟으로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의원으로 선출됐습니다.

중동평화재단의 필립 윌콕스 회장은 샤론의 군사적 무용이 또한 그의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지적합니다.

윌콕스 회장은 그가 우선 이스라엘의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인물로 비쳐졌으며, 이것이 바로 그의 인기와 지도력의 핵심이 되었다면서 그는 이스라엘을 지키고,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며, 불안한 나라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힘과 과감성을 가진 인물로 이미지가 굳혀졌다고 말했습니다.

NARRATOR:

그러나 샤론의 군사적 무용이 그의 정치 생활을 뒷받침해주는 동안에 그는 또한 무모하다는 평판을 얻게 되었으며, 몇몇 경우에는 그의 저돌적인 행동 때문에 그의 상관들로부터 책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한 팔레스타인 인들로부터 무자비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이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인들을 살해하고 구금할 때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점령을 감독했습니다.

1982년, 그는 국방장관으로 야세르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 대한 공격을 지휘하면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조직하고 시작했습니다. 레바논 침공은 베이루트 부근의 이스라엘 군 통제하에 있던 2개 난민수용소에서 팔레스타인 인 수백명의 학살을 가져왔습니다. 워싱턴 DC의 조지타운대학 현대 아랍문제연구소의 마이클 허드슨 소장의 말입니다.

사브라와 샤틸라의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에 샤론이 관련된 것으로 이것은 레바논 우익 민병대가 저지른 것이지만, 분명히 이스라엘 군의 무력과 묵인하에 수백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학살됐는데 이것이 사실상 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허드슨 소장은 말합니다.

NARRATOR:

샤론은 해임됐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법원 조사는 이 학살 사건에 샤론이 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샤론의 정계 복귀는 그가 논란많은 하람 알 샤리프 사원을 방문하면서 일어난 팔레스타인 민중봉기인 이른바 제2의 인티파타 이후인 2000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이곳은 유대인과 회교들 모두에게 성지였습니다. 제 2의 인티파타의 유혈사태는 에후드 바라크 총리의 사임을 가져왔으며, 샤론은 2001년 선거에서 압승하고, 2003년의 재선거에서도 승리했습니다.

2005년에 샤론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수반은 휴전을 발표하고 샤론 총리는 결코 철수하지 않겠다던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과 정착민들의 철수를 완료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인 출신으로 워싱턴의 중동문제연구소 연구원인 슈크리 아베드 씨는 아리엘 샤론이 아마도 팔레스타인 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인물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줄잡아 말해도 그는 신뢰를 받지 못하며 ,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증오를 받고 있고, 그의 강력한 입장과 정착촌 건설 때문에 그는 정착촌 건설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슈크리 아베드 연구원은 말합니다.

NARRATOR:

2005년 11월에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로 한 그의 결정을 둘러싸고 집권당인 리쿠드 당내에서 불만이 높아지자 샤론은 리쿠드 당을 탈당해 히브리말로 [전진]이라는 의미의 [카디마]라는 새로운 중도적인 정치운동을 결성하기 위해 주요연합과 제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는 샤론이 총리로서 세번째 임기를 승리할 수 있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샤론의 돌연한 탈당으로 그의 유산은 복합적인 것이 됐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샤롬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샤론을 이스라엘을 해치고, 끊임없는 분쟁과 폭력의 근원이 됐던 점령과 정착촌 건설에서 위험하고 중대한 모험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인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 샤론이 미래에 대한 편협한 꿈을 갖고 있으며 평화를 달성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윌콕스 회장은 지적합니다.

NARRATOR:

아리엘 샤론 총리는 리쿠드 당을 탈당하면서 한 연설에서 앞으로 협상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최종 국경을 설정하도록 노력하고 또 반드시 이루어내겠다고 말했지만, 이제 이 과업은 그의 후임자의 손에 넘어가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의심하는 과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