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中 국경 탐방기(1)  단동과 신의주, 강하나 사이로 극명한 대조

북한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는 중국의 변방도시 단동은 북한에 들어가는 전체 식량과 물품의 80 퍼센트가 통과하는 경제 요충지입니다.

북한이 지난 2002년 7.1 경제 개선 관리 조치를 단행한 이후 단동에는 수 많은 북한 관리들과 기업인들이 들어와 활발한 외화벌이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많은 북한 사람들은 식량 부족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일반 북한 주민들과는 달리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어 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단동 현지에서 VOA 기자가 보내온 자세한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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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너머로 회색빛 신의주시 모습이 손에 잡힐 듯이 들어옵니다. 하늘을 향해 입을 벌이고 있는 공장 굴뚝과 낡은 크래인들은 이 도시가 오래전 공업 도시였다는 것을 상징할 뿐 연기의 형체는 볼 수 없고 기계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중국 동북부에 위치한 단동과 북한의 신의주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도시의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단동의 압록강 공원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는 중국인 량씨 부부의 아들 대학생 량치우씨는 단동은 몇 년새 몰라보게 변했으나 신의주는 크레인의 위치와 공장, 가옥들 모두, 어린 시절 자신이 보던 그대로라고 말합니다.

중국 개방 초기부터 단동에서 13년째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박영생씨는 인구 250만의 단동지구가 최근 몇년 사이 천지 개벽을 했다고 말합니다.

“간단 명료하게 말해서 천지개벽을 한겁니다. 단동은 이렇게까지 발전을 한게 불과 3-4년밖에 안됩니다. 그 이유는 중국 중앙정부가 단동을 한반도를 기준으로 엄청나게 생각한다는 얘기죠”

중국의 개방 정책으로 단동은 고속도로와 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최신 도시로 발돋음하고 있는 반면 북한의 신의주는 강뚝에서 단동시를 하염 없이 바라보는 주민 몇 명만 눈에 뛸 뿐 대낮인데도 마치 폐허가된 도시를 방불케합니다.

특히 야경을 보면 두 도시의 차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단동은 환한 불빛과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건너편 신의주는 전기부족으로 인해 사방이 어두컴컴합니다. 멀리 한 군데 작은 불빛이 어렴풋이 비추이는 곳! 그 곳은 김일성 동상입니다.

북한 정부는 극심한 기아와 경제난으로 인해 지난 2002년 능력제와 장마당 매매등 일부 시장 경제 제도를 적용하는 7.1 경제 개선 관리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이후 중앙 정부 차원의 명령식 관리 감독체제는 느슨해진 반면 돈이면 안되는게 없다는 의식이 주민들 사이에 보편화됐습니다. 북한 정부도 국내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려는 노력을 배가시켰습니다.

7.1 경제 개선 관리 조치의 바람으로 이곳 단동에는 지난 3-4년동안 많은 북한 정부 관리들과 기업인들이 몰려 왔습니다. 단동지역에서 4년째 활동하고 있는 비정부 기구 (NGO)의 한 관계자는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단동의 북한인들은 적어도 2-3천명 이상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식적인 집계는 없지만 보통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약 3천명으로 알고 있고, 여기 나와있는 남한 사람들은 천 명 정도, 그러나 유동인구까지 포함한다면 2천명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평일 오전 동이 틀 무렵 신의주에서 5톤에서10톤 가량의 트럭 수 십여대가 단동으로 들어와 식량과 생활용품, 자동차 부품, 건설 자재 등을 구입해 해질 무렵에 돌아갑니다.

북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북한-중국 양국간의 교류도 확대되면서 지난 3-4년동안 단동에는 북한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상점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습니다. 특히 단동 세관뒤의 신작로에는 크고 작은 수 십개의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차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고, 그 가운데는 남한 상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도 상당수 있습니다.

5년전 단 한 곳에 불과하던 북한 식당도 현재 6곳이 성업중이며 더 많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복무원들이 새로운 쇼를 선보이는 등 서로 경쟁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대부분 평양에서 파견된 복무원들은 과거와는 달리 김일성 뺏지를 가슴에 달지 않고 있었고, 이들이 저녁마다 여는 30분 가량의 쇼에서는 북한노래뿐 아니라 중국과 남한 노래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부 남한 언론들은 이러한 단동내 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북한의 경제 개혁과 발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동적이고 화려한 모습 뒤에는 7.1 경제개선 관리 조치 이후- 만연된 북한 고위층들의 부정부패와 빈부 격차를 적나라하게 엿 볼 수 있습니다.

이 가게는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는 한 만물 상점 입니다.

남한 상인 우씨가 운영하는 이 상점 고객의 90 퍼센트는 북한 관리들과 기업인 가족입니다.

우씨는 북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상품가운데 하나가 미화 천 달러가 넘는 가전제품들이라고 말합니다.

“뭘 안가져 가겠습니까? 김치 냉장고, 집펠 냉장고 이동식 에어콘..안나가는게 없어요”

우씨와 대화 도중에 북한 고위급 관리로 보이는 부부가 들어와 일본산 고급 파스를 고르고 있습니다.

여주인: “몇 개 달라?”

북한 여성: “저기 저쪽하나하고 반창고 2개 달라우!

나를 위해 안주면 안되지 내가 그거 필요해선데 안주면 안되지”

북한 남성: 거 위에 깍지로 다 발라났어. 공짜 처리하는것 같은데…그런거 아니구?

상자가 쓸 데가 있다며 빼고 주려는 주인에게 이들 부부는 있는 그대로 달라고 요구합니다.

북한 여자: “내 박스는 왜 가져가냐? 그럼 거 없으면 껀수 못해! 고저 왜 꺼내고 그래?

여주인: “고저 꺼내니까..이상한 눈으로 보네. 중국놈도 아닌데 의심이 많냐?….

북한 부부는 기자 일행을 의식한 듯 물건을 봉지에 넣고 재빨리 상점문을 나섭니다. 여주인은 북한 손님들의 씀씀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 이게 만만한 돈이 아니라구…파스가 250원이면 비싼거다. 한국사람이면 난리난다. + Tr 10 : 지네들이 말하는 간부들은 한국 사람들 보다 돈을 쉽게 쓴다. 안깍아요. 한국 사람들은 써비스 달라 말이 많다.”

기자: 어떤 돈으로 지불하는가?

여주인: “게네들은 달라를 많이 써요. 우리 한국은 달러를 많이 안쓰잖아요. 근데 예네들은 고저 달러가 많아요. 비밀리에 숨겨둔 돈이 많아요. 내가 그러지 달러 썩기 전에 물건 사가라! 웃음..”

북한 일반 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은 인민폐 3천원 정도! 이는 중국돈 10원, 달러로 환산하면 1달러가 조금 넘는 액수입니다. 그런데 북한 간부들은 물건을 깍지도 않고 북한 일반 노동자의 30개월 월급에 해당하는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가고 있습니다. 냉장고 값은 아예 평생을 일해도 살 수 없는 가격입니다.

평양 상류층 출신의 탈북자인 김성민 북한 자유 방송국장은 외화벌이꾼들 또는 해외 파견 간부들의 비도덕적인 행태는 이레적인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국가에서 통제시스템이 없어요. 검증할 수도 없구. 나가서 차익을 많이 떨구면 자기 주머니에 더 많이 들어오고, 거래가 잘되서 더 이익을 가져오면 그것을 국가에 고스란히 바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런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고급냉장고를 산다든가. 내 개인으로 소유하기 위해서 혹은 뇌물로 받치기 위해서…용도는 여러가지겠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 가전 제품들을 사가지고 돌아가죠. 북한에서 살아온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전 중국 공산당 고위 지역 관리출신으로 현재 기독교 관련 단체와 함께 대북 선교 사업을 하고 있는 조선족 장준성씨는 지난 3-4년간 북한 지도층들의 부패는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합니다.

장준성 “부정부패! 이게 아주 되게 심하거든요. 이제 말하는 당일꾼은 당당하게 뜯어먹고, 안전부는 안전하게 뜯어먹고, 보위부는 보이지 않게 뜯어먹고, 검찰은 검질기게 뜯어먹고, 이 말이 전반의 흐름을 상징했다고 봅니다.”

장씨는 표면적으로 시장경제의 모양만 있을뿐 실체는 없다며 체제 변화없이는 상황이 더 악화될것이라고 말합니다.

“돈이 앞섰다는것 뿐이지 시장 경제란 형태뿐입니다. 실제로는 시장 경제가 아니고 독재 정치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구합니다.”

단동과 북한을 오가며 가장 활발히 장사를 하고 있는 계층은 북한 화교들입니다.

평양출신의 이 화교 아가씨는 요즘 평양 고위층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제품가운데 하나가 녹즙기라고 말합니다.

유엔의 대북한 식량지원 창구인 세계 식량 계획 WFP는 올해 북한이 1995년 고난의 행군 이후 최대의 풍작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80 만톤이 부족하고, 여성과 어린이 3분의 1이 여전히 영양부족과 빈혈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내 상위 20-30 퍼센트의 계층만 부정부패로 비교적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반면 나머지 70-80 퍼센트 일반 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하다는 얘기입니다.

변방지역에서 만난 회령 출신의 탈북자 박순이씨는 도토리로 양식을 대신해야 했던 최근의 삶을 애절하게 토로합니다.

“아이들이 (도토리대신)강냉이 밥이라도 달라는거예요. 근데 강냉이밥을 줄 수가 있어야지. 없어서…근데 너 이거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이케 하니깐 얘들이 억지로 절반씩 먹고 막 토하는거예요. 속에서 받지 않으니까. 그 다음에 보름이 지나니까 아이들이 전혀 안먹고 쫄쫄 눕드라구요. 엄마 나 이거 안먹구 이제 죽을래, 우리 큰 애는 자살까지 하겠다고 그랬어요.

단동의 화려한 불빛 너머로 보이는 신의주의 질흙같은 어둠!

그 뒤에는 부패로 만연된 북한 관리들의 화려한 삶과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의 삶이 미묘히 교차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