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북한 억류 선교사 아들 최진영 씨] “아버지 보고 싶어요…한국인도 미국인처럼 석방해 달라”

북한에 억류 중인 최춘길 선사의교 아들 최진영 씨(오른쪽 2번째)가 지난달 19일 유엔 인권이사회를 계기로 주제네바 한국 대표부에서 열린 부대행사에 참석했다. 사진 = 한국 통일부.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인 최춘길 선교사의 아들 최진영 씨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했습니다. 최 씨는 1일 VOA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을 향해 아버지의 생사만이라도 알려달라며 한국인도 미국인처럼 풀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중국에서 대북 선교 활동을 하던 최춘길 선교사는 2014년 북한에 억류돼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뒤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억류자 가족 대표로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한 최진영 씨(33)를 김영권 기자가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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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북한 억류 선교사 아들 최진영 씨] “아버지 보고 싶어요…한국인도 미국인처럼 석방해 달라”

기자) 지난달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리는 제네바를 방문해 아버지 등 억류자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그동안 침묵했는데 목소리를 내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진영 씨) 억류자 가족분들이 모두 연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더 한 발짝 앞서서 나가면 모든 국민이 좀 더 이 문제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사실 그런 생각은 저 혼자하고 있다가 통일부와 얘기해서 이렇게 나서게 됐습니다. (억류자 문제가) 사람들의 입에 계속 오르면 희망을 더 갖게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기자) 한국의 국민적 관심사나 나라 안팎에서 억류자 문제에 대해 관심이 너무 적다는 의미일까요?

최진영 씨) 많이 알고 계시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지인들 중에도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아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억류자가 6분이라는 것도 모르는 분들이 참 많아요. 그리고 김정욱 선교사님 가족, 김국기 선교사님 가족도 그렇고 나이로만 비교하면 저의 어머님 아버님 정도 되세요. 그래서 대외 활동을 하시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억류자 가족이 모두 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발 앞서 나가면 그분들의 마음도 제가 대신 전할 수 있고 그분들이 원하는 얘기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에 억류 중인 최춘길 선사의교 아들 최진영 씨(오른쪽)가 지난달 19일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린 제네바에서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만났다. 사진 = 한국 통일부.

기자) 가정사 때문에 아버지의 억류 사실을 지난해 처음 알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영향도 있을까요?

최진영) 그런 것도 좀 있었죠. 갑자기 거의 10년 만에 아버지가 억류됐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면 국민들도 이해를 못 하실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회피를 많이 했어요. 제가 나서는 게 맞나? 그런 생각도 했고. 통일부 장관님과 명절 때 만날 때에도 제 뒷모습만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씀도 드렸죠. 그러다가 용기를 냈어요.

기자)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부대 행사에서 억류자들에 대한 관심과 석방을 도와달라고 호소했고 살몬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터너 북한인권특사도 만났습니다. 성과가 있었나요?

최진영) 줄리 터너 특사님과 살몬 보고관님 모두 더 적극 나서주시겠다고 했기 때문에 저는 나름대로 제네바 간 것이 성공적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렇다고 이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될 것이란 생각은 안 해요. 단시간에 해결되면 좋은 일이긴 하지만요. 그래서 무조건 희망적이라고 하기보단 제가 유엔 인권이사회 (부대)행사에 참석해서 발언하고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신 분들이 있으셨고 몇 분은 저에게 오셔서 얘기 참 잘 들었다고 격려도 해 주셨어요. 그렇게 관심을 보여주시니까 저도 감사하고 나름 보람도 있었습니다.

기자) 다른 억류자 가족과 교류하거나 협의할 시간이 있었나요?

최진영 씨) 저도 아버지의 억류를 알게 된 게 사실 4개월밖에 안 됐어요. 그래서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러다 보니 교류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만나서 서로 의지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기자) 가정사 때문에 유년 시절에 아버지와 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최진영 씨) 제가 완전히 마지막으로 본 것은 고등학교 때입니다. 돌이켜보니 아버지와의 추억도 생각보다 많이 생각납니다. 같이 살 때가 많은 기억이 납니다. 저희 아버지는 기러기 아빠였어요. 건설 쪽에서 일하시다 보니 타지 생활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도 오실 때마다 다른 자녀들이 갖고 있는 것인데 나만 없다고 하면 하나라도 더 챙겨 주시고. 먹는 것도 아낌없이 챙겨주셨던 분이셨어요. 아들이 하나 밖에 없다 보니까 아들한테 해 줄 수 있는 것은 불과 1~2주에 한 번 만나긴 했지만 그때만큼은 아들에 대해 정을 많이 쏟아붓고 가셨어요.

한국 서울역에 설치된 TV에서 북한 당국에 체포돼 억류 중인 한국 국민 김국기(왼쪽)씨와 최춘길 씨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기자) 그럼 아버지의 억류 사실을 처음 아시고 많이 놀라셨을 텐데 어떻게 소식들을 접하고 억류 정보도 챙기셨나요?

최진영 씨) 첫째로 VOA 기사를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 아버지 억류 사실을 안 뒤 사흘간 회사에 연차를 쓰고 아버지 기사를 정말 많이 찾아봤어요.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이것이 기자님과 인터뷰해서가 아니라 VOA 기사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 구글, 네이버 등을 통해서요. VOA가 미국 매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그래서 감사하고 더 관심 있게 봤습니다.

기자) 터너 특사를 만나 미국 정부에도 도움을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최진영 씨) 네, 북한에 계신 저희 아버지와 김국기, 김정욱 선교사님에 대해 사실 송환 여부보다 생사 여부라도 먼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거 하나만이라도 외교력을 써서 좀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은 저희 동맹국이잖아요. 그래서 좀 더 발 벗고 나서주셨으면 하는 저의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기자) 안타깝게도 북한 정권은 전혀 협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진영 씨) 북한 측에는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요. 사실 심한 소리도 하고 싶죠. 그런데 인권이 없는 나라라는 것을 우리 전 국민도 알고 유엔도 아니까요. 하지만 정말 양심이 있다면 미국인이나 캐나다인만 풀어줄 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도 생사만이라도 확인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하고 싶어요. 북한도 유엔 회원국이니까 이런 인권 문제에 대해서 (김정은 위원장도) 자기 아이를 소중히 생각하는 만큼 타국의 사람들 인권도 존중해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 앞으로 아버지와 억류자 구명 운동을 위해 어떤 계획이 있나요?

최진영 씨) 개인적 바람은 억류자 가족이 좀 더 나서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우선 가족이 한마음이 되고요. 나서지 못한다면 저한테라도 말씀해 주시면 힘닿는 대로 노력을 할 계획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찾아보다가 느꼈는데 가능하다면 하나원에 계신 탈북민이나 출소한 분들에게 자원봉사 하는 것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저도 탈북민분들에게 봉사 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등 억류자분들의 이름도 더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정부나 민간에서 요청을 하면 언제든 적극적으로 활동하려고 합니다.

기자)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유엔 인권최고대표에게 서한을 전달하셨는데, 아버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최진영 씨) 억류 사실은 정말 가슴 아프고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열악한 곳에서 혹시 아프시지는 않은지 식사는 제대로 하고 계시는지도 걱정됩니다. 열악한 곳에서 정말 고생이 많으실 텐데 안 뵌 지도 오래돼서 정말 많이 보고 싶습니다.

북한에 10년째 억류 중인 한국인 최춘길 선교사의 아들로 유엔을 통해 억류자 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호소한 최진영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김영권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