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 보기] "한국, 북한인권법 시행 계기로 대북 인권압박 본격화"

박근혜 한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인권법 시행 등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북한인권법 시행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이어 인권 문제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한반도 관련 뉴스를 심층 분석해 전해 드리는 `뉴스 깊이 보기,' 서울의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11년 만에 한국에서 제정된 북한인권법이 지난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이로써 한국 정부가 일관되고 체계적인 북한인권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동대 원재천 교수입니다.

[녹취: 원재천 교수] “북한인권법 시행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전세계에 천명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이 대한민국 국민 수준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면서도 도덕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인권법에 따라 한국 정부가 맡게 되는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북한 당국에 의해 이뤄지는 인권범죄를 기록, 보존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통일부에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치하고, 수집된 자료는 3개월마다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이관하도록 했습니다.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던 북한 인권 침해 조사와 기록을 한국 정부가 체계적으로 실시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설명입니다.

이를 통해 북한 지도층에 대한 경고의 의미와 함께 향후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를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겁니다. 한국 외교부 이정훈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입니다.

[녹취: 이정훈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과거 서독이 동독 내 인권침해를 기록하는 잘츠기터 기록보존소를 통해 동독 내 인권 침해 가해자들에게 ‘통일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 효과를 준 것처럼 북한인권기록보존소도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통일 후 과도기 정의 (transitional justice) 차원에서 통일 전 벌어진 많은 인권기록들을 축적해 통일 후 정의가 설 수 있는 사법절차의 근거로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인권법에 따라 북한 당국의 인권 침해를 기록하고 공개하는 방식으로 인권을 통한 대북 압박도 가능해질 것이란 관측입니다.

홍용표 한국 통일부 장관(왼쪽)과 유호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28일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기록센터 개소식에서 현판 제막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 외교가에서는 북한인권법 시행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이어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위협과 인권 문제는 별개 사안이지만 북한의 인권문제 역시 대북 압박과 제재의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겁니다.

윤병세 한국 외교부 장관이 지난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조치를 촉구한 것도 이 같은 판단에 기반을 뒀습니다.

북한 인권침해에 대한 유엔 차원의 제재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는 대북 제재 결의로는 처음으로 북한 주민을 위한 자원이 핵 개발에 전용되는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함으로써 향후 안보리 결의에 북한 인권 문제가 포함될 가능성을 열어놨습니다. 국제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이영환 대표입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2014년 유엔 COI 보고서에서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북한에서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북한이 정권 유지를 위해 핵 개발을 하는 데 있다고 판단함으로써 COI보고서 이전에 북한의 핵과 인권 문제를 분리해서 접근하던 분위기에서 보고서 이후 두 문제를 함께 언급해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국제사회의 인식이 변화했다는 점입니다.”

미국 정부도 지난 7월 초 의회에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나열한 인권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개인 15명과 기관 8곳에 대한 제재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지난달에는 북한의 해외 노동자가 체류하는 23개 나라의 명단이 담긴 인권증진전략보고서를 낸 데 이어 북한 주민들에 대한 정보 유입 확대 방안을 담은 보고서도 제출했습니다.

북한인권법 시행에 따라 한국 정부도 미국 정부처럼 대북 인권제재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제기나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제공하는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정현 교수입니다.

[녹취: 조정현 교수] “북한 해외 노동자의 경우 북한에 주소를 두고 있으면서 잠시 해외에 나간 것으로 해석돼 북한인권법의 적용 대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 해외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부당한 노동환경이나 열악한 인권 상황에서의 해외 노동을 차단할 경우 부수적으로 북한 정권의 돈줄을 차단하는 제재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만큼 북한 정권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는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정훈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라디오 방송이나 정보 유입 등 실질적인 북한 인권 개선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내에선 기존의 교류협력에 방점을 둔 대북 정책에서 압박 위주의 대북 정책으로 접근 방식이 바뀐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를 핵 문제와 연계해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한다면 북한인권법 제정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26일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이 주최한 북한 인권 토론회에 참석한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김수암 박사] “북한 당국에 대한 압박도 필요하지만 북한 당국을 끌어내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합니다. 유럽연합의 경우 지난 해 말 북한과 정치 대화를 했는데 인권 문제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효과 여부와 관계없이 인권 대화는 필요하므로 북한인권법에 규정된 남북인권대화가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의 북한인권법도 북한인권증진 노력과 함께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한국 정부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로 남북인권 대화 추진과 대북 인도적 지원을 명시하고 있지만 현재의 남북관계를 감안하면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입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북한인권 개선 정책과 남북관계 발전을 병행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인 서창록 고려대 교수는 북한인권법에 제시된 인권 개선 방안의 경우 북한의 협조 없이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만큼 북한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완화할 수 있는 유연하고 효과적인 방식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북한인권 전문가는 서독 역시 중앙기록보존소 설치와 같은 인권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독과의 교류협력을 병행한 바 있다며 남북인권 대화 의제의 경우 이산가족이나 여성, 아동, 장애인 문제 등 북한이 수용 가능한 의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제3국 체류 탈북자에 대한 북한인권법 적용 여부 등과 같은 쟁점도 여전히 남아있어 구체적인 후속 보완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