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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후의 1차 대전 참전용사 타계


2008년 5월 미조리 주 1차대전 기념비 제막식에서 성조기를 받는 버클스 씨
2008년 5월 미조리 주 1차대전 기념비 제막식에서 성조기를 받는 버클스 씨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국의 마지막 참전용사가 27일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전직 육군 상병 프랭크 버클스 씨는 110세였습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몇 년 전 버클스 씨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2008년 3월 프랭크 버클스 씨는 자신을 비롯한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의 초상화가 미 국방부에서 공개되는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버클스 씨는 1917년 15살이었을 당시 육군에 입대하기 위해 나이를 두 번이 속였다고 시인했지만, 웃으며 자신이 거짓말쟁이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버클스 씨는 18살로 나이를 속였는데 신병 모집자는 21살은 돼야 입대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다시 나이를 21살로 고쳤다고 밝혔습니다.

버클스 씨는 당시 자신을 인터뷰한 기자들에게 자신의 나이가 더 많은 것 같지 않다며 농담했지만 실제로는 그들 보다 나이가 두 배는 더 많았습니다.

버클스 씨가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자택에서 27일 별세한 뒤 다음날 국방부 직원들은 버클스 씨의 초상화 앞에 하얀 장미와 편지를 놓았습니다. 편지에는 “나라를 위한 헌신에 감사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세대가 평화롭게 안식하길 바랍니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3년 전 국방부의 큰 강당에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비롯한 당국자들이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리에서, 버클스 씨는 휠체어에 앉아 관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게이츠 장관은 사망한 참전용사들의 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프랭크 버클스 상병에게 직접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참전용사들이 90년 전 국가를 위해 바친 헌신에 감사하며, 그들이 장수하고 있음을 기뻐한다고 말했습니다.

버클스 씨는 당시 백악관에도 초청받아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만났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버클스 씨와 그의 딸 수산나가 백악관 집무실을 방문한 것은 영광이라며 버클스 씨가 역사적 시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제복을 입고 군대에 복무했던 퇴역군인들과 또 현역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길은 버클스 씨의 애국심과 조국에 대한 사랑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버클스 씨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군에 입대하고 싶어 신병 모집자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버클스 씨는 16살에 응급차 운전사로 유럽에 파견됐으며 부상자들을 나르면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게 됐습니다. 이후 버클스 씨는 독일 전쟁포로들을 차에 태워 독일로 돌려보내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버클스 씨는 1920년에 제대해 필리핀의 선박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버클스 씨를 비롯해 필리핀에 있던 미국인들은 일본군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버클스 씨는 미군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악명 높은 로스 바노스 감옥에서 삼 년을 억류당했습니다. 당시 감옥에서 버클스 씨가 사용한 그릇은 그의 초상화에도 그려져 있으며 미 국방부에 진열돼 있습니다.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셸 오바마 영부인도 28일 성명을 발표하고 버클스 씨의 공헌을 높이 치하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기념재단의 명예회장으로 죽을 때까지 미국을 위해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 내외는 버클스 씨의 인생여정은 진정한 의미의 애국자의 삶이 무엇이며, 미국인들이 서로에 대해 가지는 의무감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고 말했습니다.

한편으로 프랭크 버클스 씨는 수 백만 명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버클스 씨의 열정과 장수는 남달랐습니다.

110살까지 장수한 버클스 씨의 삶은 실로 남달랐습니다. 버클스 씨 자신은 살아있는 동안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매 순간을 아꼈다고 생전에 말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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