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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주한 미국대사 인터뷰 시리즈 2 ] 제임스 레이니


‘미국의 소리’방송은 전직 주한 미국대사 3명으로부터 재임 시절 미-한 관계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들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제임스 레이니 전 대사 편입니다. 레이니 전 대사는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 정부 시절인 지난 1993년부터 97년까지 서울에서 근무했습니다. 김연호 기자가 레이니 전 대사를 인터뷰했습니다.

문) 레이니 전 대사님 안녕하십니까. 1993년 서울에 부임하시기 전에 이미 북한 핵 문제가 악화돼 있었는데요, 당시 미국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까?

답) 핵무기 제조를 위한 북한의 핵 개발 계획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기본입장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으로 이미 상당한 위협을 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도 막강한 군사력을 통해 북한과 상호 군사억제를 유지하는 정책을 유지했었습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이 한국, 특히 서울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이 자극을 받아 공격에 나서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문) 당시 클린턴 미국 행정부가 대화와 압박을 적절히 섞어서 대북정책을 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문제는 미국이 정책을 분명히 밝히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요원들을 추방했다는 거였습니다. 1994년 초 북한 핵 문제가 위기로 치닫게 된 계기였죠. 당시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의미 있는 직접 접촉이 없었습니다. 북한이 핵 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명백하게 위반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유인책을 상상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문)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성공할 것으로 생각하셨습니까?

답) 미국의 대북정책 전반에 대해서는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북한과의 의사소통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했습니다. 북한이 사안의 중대성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북측과 논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평양에 외교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장치가 없습니다. 따라서 미군이 한국에 증강 배치될 경우 북한은 이를 미국이 1990년 이라크 침공과 비슷한 침공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 때처럼 군사력을 증강해서 북한을 궤멸시키도록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우발적으로라도 한반도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긴장 상황을 어떻게 중단하느냐가 최대 현안이었습니다.


문) 미국이 북한과 직접 접촉을 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답) 북한과 공식적으로 직접 접촉을 하면 미국이 양보를 하기 위해 첫 걸음을 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는 대북 유화정책으로 해석됐었을 겁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군사적으로 강인한 행정부라는 인식을 심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클린턴 대통령 자신이 국내정치적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94년 4월과 5월 상황이 크게 안 좋아졌을 때 저는 상원 군사위원장인 샘 넌 민주당 의원과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였던 리처드 루거 의원을 접촉했습니다. 두 의원은 긴장완화 방안을 중재하기 위해서 북한을 비공식 방문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두 의원의 방문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북한 방문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은 이미 2년 전에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북한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문) 클린턴 행정부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북한 핵 문제에 돌파구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까?

답) 아닙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에게 외교정책을 떠맡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결국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승인하고 필요한 브리핑을 해줬습니다.

문) 한국 정부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습니까?

답) 카터 전 대통령으로부터 클린턴 행정부의 승인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김영상 대통령에게 알려줬는데 김 대통령이 매우 불쾌해 했습니다. 김 대통령은 미국과 한국이 최소한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했다고 본 겁니다. 그리고 김 대통령은 실패한 정책에 참여한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양보를 했는데 거부 당하면 어떡하냐는 것이죠. 그럴 경우 국내정치적인 파장에 대해서도 김 대통령이 우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카터 전 대통령과 제가 김 대통령을 만났을 때 반응이 냉담했습니다. 당시 이홍구 통일부 장관을 제외하고는 내각 전체가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결과에 대해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만족해 했습니까?

답)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을 다시 받아들이고 핵 시설도 다시 동결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용의도 밝혔는데요, 이 소식이 전해지자 김 대통령이 기뻐하면서 김일성 주석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즉시 발표했습니다.


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높았습니까?

답)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높았죠.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에 머무는 동안 게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당장 만나자고 하더군요. 제 사무실로 오면 다른 사람들 눈에 띌 테니까 아침에 제 관저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미 국방부가 즉시 한반도에 군사력을 증강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전했는데요, 그럴 경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김일성 주석이 이미 경고한 바 있던 터였습니다. 럭 사령관은 정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상황이 매우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미국 민간인 철수가 먼저 이뤄지지 않으면 군사력을 증강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미 국방부의 군사력 증강 결정은 한국 정부와 협의 없이 이뤄졌습니다. 럭 사령관과 저는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에 반대의 뜻을 담은 전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의 핵 동결 약속을 받아냈고 상황이 눈에 띄게 진정됐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이 없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문) 미국이 북한과 본격적으로 핵 협상을 하면서 경수로 건설을 제안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미-북 기본합의에 경수로 건설이 포함됐는데, 이 구상은 어떻게 나온 겁니까?

답) 경수로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 북한이 핵 협상을 하기 오래 전에 이미 논의됐었습니다. 93년 여름 주한미국 대사 인준청문회 때문에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를 만났습니다. 갈루치 차관보는 나중에 미-북 핵 협상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경수를 지어주는 대신에 핵 개발 계획을 맞바꾸는 방안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요, 이 방안은 당시 워싱턴에서 한동안 논의됐던 내용입니다.

문) 그 동안 북한 붕괴론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는데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붕괴론에 어느 정도나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까?

답)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저는 북한이 2000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의 대북 지원이 중단됐고 북한의 미래에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지도 불투명한 상태였습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오랫동안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당시 일반적인 평가였지만 결국 틀렸다는 게 분명해졌습니다. 북한이 붕괴를 피할 수 있도록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준 겁니다.

문)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미국과 한국이 여기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답)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염두에 둔 비상계획은 없었습니다. 무방비 상태에 있었던 거죠. 권력승계가 무리 없이 이뤄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는데요, 이런 상황은 미리 계획을 짜서 대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미국과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에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을 겁니다.


문) 레이니 전 대사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로부터 재임 시절 미-한 관계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마련한 전직 주한 미국대사와의 인터뷰 시리즈, 내일은 토마스 허바드 전 대사와의 인터뷰를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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