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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주한 미국대사 인터뷰 시리즈 3 ] 토머스 허바드


토마스 허바드 전 대사
토마스 허바드 전 대사

저희 ‘미국의 소리’방송은 전직 주한 미국대사 3명으로부터 재임 시절 미-한 관계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들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토머스 허바드 전 대사 편입니다. 허바드 전 대사는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 정부 말기인 2001년부터 노무현 대통령 정부 시절인 2004년까지 서울에서 근무했습니다. 김연호 기자가 허바드 전 대사를 인터뷰했습니다.

문) 허바드 전 대사님 안녕하십니까? 한국에 부임하시기 전부터 북한 핵 문제에 깊이 관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역할을 하셨습니까?

답) 1993년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를 지내면서 동북아시아 문제를 담당했습니다. 물론 한반도도 제 업무 영역에 포함됐기 때문에 한국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대북 핵 협상에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고 한국 측과 이 문제를 놓고 긴밀히 공조했습니다. 미-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될 때까지 로버트 갈루치 수석대표를 보좌해 부대표로 북한과 협상했습니다.


문) 서울에 부임하셨을 때 북한과 관련해서 당장 직면한 문제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답) 제가 대사로 부임했을 때는 조지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첫 해였습니다. 그 당시 가장 큰 과제는 미국과 한국 두 나라 사이의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김대중 한국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가진 뒤 몇 달 지나서 제가 한국에 부임했는데요, 두 정상이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는 문제를 놓고 의견 일치가 완전하지 않았다는 게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두 나라 정부 사이에서 조율을 시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과 한국 양측의 주요 목표는 북한과 다시 접촉해서 생산적인 협상과 대화를 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 동안 북한과 대화가 사실상 중단됐었지만 미국은 생산적인 협상에 복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문) 당시 일부 언론은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2001년 정상회담을 ‘재앙’으로까지 표현했습니다. 정상회담의 악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대사님께서는 어떤 역할을 하셨습니까?

답) 제가 한국에 부임하기 전 부시 행정부는 이미 북한과 회담을 재개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도착한 날은 운명적인 날이었습니다.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테러 참사가 발생한 날이었죠. 그래서 서울에 도착한 뒤 몇 주 동안은 새롭게 부상한 테러 위협 문제에 전념했습니다. 하지만 대사관이 정상적인 업무로 돌아간 뒤에는 북한과 생산적인 대화의 형태로 돌아가는 문제가 최대 현안이 됐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전 행정부보다 더 적대적이라고 느끼고 시간을 끌고 있었습니다.

문) 부시 행정부가 적어도 1기 때는 북한 핵 문제를 협상으로 풀 수 없다고 믿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좀 지나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아주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출발했습니다. 클린턴 전 행정부에서 타결된 미-북 기본합의가 과연 목표를 달성하겠냐는 입장이었죠. 부시 행정부는 북한인권 문제를 더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과 대화가 필요하고 중요하기는 하지만 대화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고 싶어했던 겁니다. 시간이 가면서 현안들이 변하기는 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한국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을 당시 부시 행정부는 목표를 이루는데 대화가 중요한 방법이라는 쪽으로 시각을 바꿨습니다.

문)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의 일부로 지목했습니다. 이 ‘악의 축’ 발언이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당시 한국인들이 어떤 점을 우려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한국인들은 적어도 세 가지에 대해 우려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당시 한국인 대부분이 여전히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했습니다. 한국인들은 북한과의 대화가 옳다고 믿었고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 대화 재개에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이 과연 북한과 대화를 원하는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두 번째는 북한과 대화가 없던 상태였기 때문에 한반도에 새롭게 긴장이 조성되는 것에 대해 한국인들이 아주 불안해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태에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같은 부류로 취급한 것을 두고 한국인들은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는 뜻인지 궁금해했습니다. 물론 한국인들은 전쟁을 원치 않았죠.

문) ‘악의 축’ 발언과 관련해서 미국과 한국이 사전에 조율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답) 아닙니다. 전혀 조율이 안됐습니다. ‘악의 축’이라는 표현은 연설문 작성자가 연두교서에 집어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연설문 작성자 모두 ‘악의 축’이란 표현이 가져올 파장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연두교서를 발표한 지 2주 정도 지나서 부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는데요, 김대중 대통령과 얘기하면서 부시 대통령이 한국 측의 우려를 알게 됐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부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뒤로 ‘악의 축’ 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국 방문 기간 중에도 이 표현을 쓰지 않았는데요, 이를 통해서 한국 지도자들과 국민들을 안심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문)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우려가 계속 남아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공개적인 발언, 예를 들어 미국이 1994년 북한을 공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빌 페리 전 국방장관의 발언이 한국 측의 우려를 부추겼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존 볼튼 국무부 차관과 딕 체니 부통령 같은 인사들의 매우 강경한 발언들도 듣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일부 강경 발언들을 미국이 북한을 실제로 공격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미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를 정책으로 삼고 이를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를 할 것이라는 해석도 오해였습니다. 그건 미국의 정책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용된 일부 표현들이 노 대통령에게는 우려가 됐던 겁니다.


문) 주한미국 대사로서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으셨을 거 같은 데, 어떻습니까?

답) 북한과 관련해서 아주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북한도 행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2002년에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계획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인했습니다. 북한 측이 스스로 북한 문제를 다루기 어렵게 만든 겁니다. 결국 미-북 기본합의가 깨지고 경수로 건설을 위해 설립됐던 한반도에너지 개발기구도 해체됐죠.

문) 북한이 나쁜 행위를 저질러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더 강경해 질 수 있는 빌미를 주기를 부시 행정부가 내심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답) 아닙니다. 미-북 기본합의를 아주 싫어해서 이 합의를 깰 빌미를 찾고 있던 사람들이 부시 행정부 안에 일부 있었겠지만, 그건 부시 대통령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나 제임스 켈리 차관보의 견해도 그렇지 않았다는 걸 저는 압니다.

문) 허바드 전 대사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토머스 허바드 전 주한 미국대사로부터 재임 시절 미-한 관계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마련한 전직 주한 미국대사와의 인터뷰 시리즈, 오늘 보내 드린 허바드 전 대사 편을 끝으로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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