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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의 잃어버린 유산  - 2005-01-16


1월 17일은 인종 차별에 대항해 투쟁하다 암살된 미국의 민권 지도자,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기념일입니다. 대부분의 관공서와 금융기관, 학교들이 문을 닫은 연방 공휴일인 오늘, 킹 목사가 부친과 함께 목회를 했던 조지아주 아틀란타의 한 교회에서 연례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킹 목사는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암살되기 4년 전인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킹 목사는 인종차별을 반대한 비폭력 저항운동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68년 암살되기 전까지 킹 목사는 인종 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저명한 역사가들은 그러나 킹목사가 미국의 경제 정책과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는 사실은 망각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킹 목사의 잊혀진 유산에 대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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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의 탄생일이 연방 공휴일로 제정되기까지는 15년이 걸렸습니다. 1868년 킹 목사가 암살되고 4일 후, 미시건 주 출신의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이 이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3년 이날을 공휴일로 정하는 법안에 서명을 하기전까지 이는 빛을 보지못했습니다. 그리고 3년 뒤에까지도 이 법안은 실제로 발효되지 못했습니다.

킹 목사의 가족과 지지자들은 그의 탄생일을 공휴일로 제정하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처음으로 공휴일이 시행된지 19년이 지난 오늘날, 일부 역사가들은 마틴 루터 킹의 날이 정작 민권운동가인 킹 목사의 유산에 대해서는 소흘히 다루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십자가를 지고:마틴 루터 킹과 남부기독교 지도자 회의]란 저서로 퓰리쳐상을 받은 데이빗 개로우 개로우 교수는 “마틴 루터 킹의 날의 가장 큰 위험은 뭐니뭐니해도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그의 연설만을 수도 없이 재탕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개로우 교수는1963년 수십만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행한 유명한 [내게는 꿈이 있다] 라는 연설은 민권운동가인 킹 목사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예라고 말합니다. 개로우 교수는 킹 목사의 그 연설이 그를 아주 밝은 낙천주의자로 보이게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개로우 교수는 “젊은이들이 킹 목사에 대해 아주 잘못된 인식을 갖도록 방치되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면서, 그의 열정적인 연설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반면, 경제적인 불평등과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가로서의 킹의 면모가 간과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암살되던 날, 하수설비 노동자들이 벌인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테네시 주 멤피스 시에 가 있었습니다. 킹 목사는 그가 암살되기 바로 전에 [왜 미국은 지옥으로 떨어지려고 하는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보다 2년 앞서 킹 목사는 도시 빈민문제를 환기시키고, 인종차별이 남부에만 존재한다는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시카고 시의 한 슬럼가로 이사했습니다. 킹 목사는 또한 1967년 뉴욕에서 행한 설교를 통해 미국을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큰 폭력의 장사꾼이라고 비난하면서 베트남전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스탠포드대학 [킹 페이퍼스 프로젝트]의 클레이번 카슨 소장은 “좁게 보면 민권문제는 어떤 면에서 가장 해결하기 쉬운 것이었다고 지적하고, 그것은, [브라운 대 교육청] 사건의 판결에서 미국 대법원이 밝힌 바와 같은 미국의 지배적인 가치와, 남부에서의 흑인들에 대한 처우 사이에는 그 차이가 현격하게 식별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클레이번 카슨 소장은 과거 20년동안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편지와 연설문을 편집해오고 있습니다. 카슨 소장은 “킹 목사가 남부에서처럼 북부에서 만연되고 있던 문제들에 맞서기 시작했을 때 그가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것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직면하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일반인들의 킹 목사에 대한 기억이 경제정책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보다는 인종문제와 비폭력문제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가인 데이빗 개로우 교수는 그것은 오늘날 인종분리정책을 철폐하라는 마틴 루터 킹의 주장을 반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킹 목사가 자신을 민주 사회주의자로 묘사한 부분을 강조하거나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전쟁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조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가로서의 킹의 면모를 강조한다면, 킹의 날 경축은, 오늘날의 경제 평등이 1968년보다 과연 나아졌는가, 그리고 지난 1968년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이 킹이 그토록 강하게 비판했던 군사주의와 독불장군식의 태도와 비교해서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데이빗 개로우 교수는 마틴 루터 킹의 역사적인 평가가 높아지는 것은 이제 킹의 탄생일이 ��휴일이 됐기때문에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개로우 교수는 아주 보수적인 정치지도자들 까지도 킹 목사의 유산과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반대를 포용하는 길을 모색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킹의 날 경축은 미국인들에게 미국의 인종 차별 역사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로우 교수는 반면에 킹 공휴일은 오히려 아프리카계 미국 청년들에게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피살된 그가 주장했던 경제적 불평등과의 싸움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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