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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현지 지도에 김경희 등 가족 자주 등장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 지도에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가 자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후계 작업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최원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최근 현지 지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과 남편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입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를 또다시 찾으시고 폭포 치며 쏟아지는 비날론 솜을 보셨습니다. 내각 총리 김영일 동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인 김경희 동지와 장성택 동지를 비롯한 책임 간부들이 동행했습니다.”

북한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을 기준으로 할 때 지난 해 김경희와 장성택 부부는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 지도를 12번이나 수행했습니다. 특히 김경희와 장성택의 지난 해 김 위원장 수행은 12월에 집중돼 무려 10회에 달했으며, 올 들어 수행한 횟수도 이미 6회에 달합니다.

한국 정부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전현준 박사는 김경희와 장성택이 김 위원장을 자주 수행하는 것은 북한의 후계 구도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후계 구도와 관련해 김정은으로 후계 구도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 것을 장성택, 김경희가 그러니까 고모와 고모부가 이 것을 추인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탈북자 출신인 한국 서강대학교 안찬일 교수도 김정일 위원장이 김경희와 장성택을 선전매체에 등장시키는 것은 이른바 ‘백두혈통’을 강조해 주민들에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의 정당성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장성택으로 말하면 김정일의 하나 밖에 없는 동생 김경희의 남편이고, 김경희도 작년부터 주석단에 나타나고 현지 지도에 따라 다닌다는 것은 차기 지도자인 김정은을 위해 얼굴을 나타내고, 이렇게 함으로써 주민들에 세습체계의 정당성과 세습체계가 불안하지 않고 이런 사람들에 의해 담보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김경희와 장성택이 수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안찬일 교수는 또 올해 68살로 노년기에 접어든 김정일 위원장이 ‘믿을 것은 가족 뿐’이라는 심정에서 김경희와 장성택을 곁에 두고 싶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병약해지고 노쇠해지면 혈족을 주변에 두는 것이 마음도 편안하고 믿을 만하고, 당연지사라고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충성을 바쳐왔다고 하지만 가족보다 잘할 순 없죠.”

일부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의 ‘유고 사태’에 대비해 장성택과 김경희를 함께 데리고 다닌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2년 전 뇌졸중을 앓은 김정일 위원장이 또 다시 쓰러지는 등 건강이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 경우 북한은 부득불 ‘유훈통치’ 를 해야 하는데 측근들의 말이 엇갈리면 안되기 때문에 장성택과 김경희를 데리고 다닌다는 분석입니다. 지난 2008년에 탈북한 김은호 씨의 말입니다.

“만약의 경우 김정일의 건강 이상이 생겨 사망하거나 쓰러질 경우 북한은 유훈통치라는 게 내려 오는데, 정은이 후계 구도에 지장이 있을까봐, 정은이는 아직 정치적 세력 기반이 없기 때문에, 유훈이 혼란스런 사정을 피하려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 지도에서 특이한 것은 또 있습니다. 올해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해’로 정한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초부터 공장과 기업소를 자주 다니며 현지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달 3일 이후 수행원 명단에 북한의 경제정책 책임자인 박남기 계획재정 부장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남기가 지난 해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를 123회나 수행한 점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 내 지인들과 자주 전화통화를 한다는 탈북자 김은호 씨는 박남기 부장이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희생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주민들 속에서 떠도는 설이 박남기가 이번 화폐개혁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제물로 받쳐졌다는 거죠. 말하자면 김정일로 가는 화살을 박남기에 돌렸다고 북한 주민들이 입을 모으고 있답니다.”

평양의 수뇌부가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관료에 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을 아닙니다. 지난 90년대 중반 식량난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하자 북한 당국은 당시 노동당 농업 담당 비서였던 서관히를 ‘반체제 혐의’로 몰아 처형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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