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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북한 보위부 성명 내부 민심 겨냥한 듯’


북한의 체제 보위기관인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가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대북 체제전복 시도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두 기관의 이례적인 성명은 화폐개혁 실패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북한 당국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의 양대 체제 보위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은 어제(8일) 발표한 연합성명에서 남한의 대북 체제전복 기도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남조선 당국이 있을 수도 없는 우리의 그 무슨 급변 사태를 의도적으로 조장하면서 이미 완성한 작전계획 5029와 비상통치계획 부흥을 실행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성명은 서해상에서 한국 해군의 활동과 한국 내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 등을 구체적인 사례라며 제시했습니다.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이 연합성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서울의 민간단체인 북한전략센터의 북한 전문가인 김광인 박사는 이번 성명이 내부 정보 유출과 관련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에 북한 뉴스들이, 국경지대에서 화폐개혁과 관련해 인민들이 불만이 고조돼 있다든가 하는 뉴스가 속속 들어오고 있잖습니까, 그런 내용이 많이 들어오는데, 북한이 그런데 굉장히 신경이 많아 쓰이는 것이죠.”

서울의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 NK’의 손광주 편집국장은 북한이 한국 당국이 마련한 북한 급변사태 계획에 자극 받아 이 같은 성명을 내놨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북한 당국이 그렇게 표현한 것은 작전계획 5029하고 부흥계획, 그러니까 북한의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계획이 부흥 계획인데요, 그런 내용이 언론에 비춰지고 그런 기사가 간헐적으로 나오니까, 북한 당국 입장에선 체제전복에 대한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앞서 북한의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도 지난 달 15일 “남한 당국이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며 “청와대를 날려 버리기 위한 보복 성전을 개시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북한의 이번 성명은 화폐개혁 이후 주민들의 민심이 흉흉해진 것을 한국 탓으로 돌리려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한국 `조선일보’의 강철환 기자는 체제 보위기관이 성명을 낸 것은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동요와 저항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습니다.

“군부가 나선 것도 아니고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가 공동으로 이런 성명을 냈다는 것은 그만큼 군사적 위협 외에 체제 내부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활동 분위기들, 주민들의 반 김정일 분위기가 상상 외로 커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마치 남한과 연계시켜서 북한의 내부 파괴를 꾸며서, 음모하고 있다든지 이런 어거지를 씌워서 자신들의 북한 주민 탄압을 정당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연말 단행된 화폐개혁의 실패로 북한 내부의 민심은 상당히 격앙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화폐개혁으로 재산을 빼앗긴데다 쌀값마저 천정부지로 오르자 주민들이 장마당에서 안전원에 대드는 사태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 내 지인들과 정기적으로 전화통화를 하는 서울의 김대성 고려북방경제연합회 회장의 말입니다.

“북한 내부적으로 반발이 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안전원 있잖아요, 경찰. 옛날에는 안전원이 단속하면 아무 대꾸도 못했는데 요즘은 장마당에서 안전원과 막 싸우는 상황까지 갔대요, 요즘 날은.”

북한의 이번 성명과 관련, 지난 1990년대 미 국무부 북한 담당관을 지낸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는 평양 내부에서 대남 노선을 둘러싸고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힘 겨루기가 진행 중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이 성명을 발표한 8일 개성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실무회담이 열렸는데, 이는 평양 내부에서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파와 당과 내각의 협상파가 갈등을 벌이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탈북자 출신인 한국 서강대학교의 안찬일 교수는 북한의 대남 노선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내부의 권력 승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일 한 사람의 판단이 흐린다든가 하는 차원에서 볼 문제가 아니라 강온 전략이나 언밸런스니 하는 북한의 정책적 표현은 그만큼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 봅니다.”

북한의 이번 연합성명이 서울을 겨냥한 것인지, 화폐개혁 이후 흉흉해진 북한 내부의 민심을 의식한 것인지는 분명히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체제 보위의 최일선에 있는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가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북한 내부 사정이 심상치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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