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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탈북 난민 의료 통역사 1호 탄생


미국에 난민 자격으로 입국한 탈북 여성이 최근 정착 도시에서 인정하는 의료통역 자격증을 취득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탈북 난민들의 미국 입국 연한이 4년째 접어들면서 서서히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탈북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문) 반가운 소식이네요. 미국 내 탈북자 1호 통역사가 탄생했다고요?

답) 네, 지난 2008년 여름에 태국을 통해 입국한 30대 중반의 탈북 여성 제니 씨가 최근 중서부의 한 도시가 인정하는 의료 통역사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제니 씨는 이 도시의 한 가톨릭 기관이 시 정부의 인가를 받아 운용하는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시험을 통과해 의료통역사가 됐습니다.

문) 의료통역사란 말이 청취자 분들에게는 참 낯선 직업일 것 같은데요. 어떤 일을 하는 겁니까?

답)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민자나 난민, 여행자들이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와 환자 사이에 통역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의료 용어는 상당히 전문적인데다가 환자가 의사의 진료 결과를 잘못 알아들으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시 정부에서 가톨릭 단체 등과 손잡고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도시에는 의료 외에도 사업과 법률 담당 통역도 있는데요. 의료통역사만이 유일하게 40시간의 강의를 의무적으로 이수한 후 시험을 치도록 하는 등 상당히 까다로운 규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문) 미국에 정착한 탈북 난민들이 적응에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영어라고 하는데, 제니 씨의 통역사 자격증 취득이 다른 탈북자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답) 그렇습니다. 제니 씨가 취득한 자격증이 한국의 동시통역사처럼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 통역사는 아니지만 수도권까지 합해 인구 1백 20만 명이 넘는 대도시에서, 정착한 지 2년도 안 된 탈북자가 의료통역사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문) 제니 씨의 얘기를 들어봐야겠군요. 어떻게 해서 의료통역사 시험에 도전할 생각을 했다고 합니까?

답) 제니 씨는 14일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손재주가 너무 없어 언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 두 가지 분야 중의 하나를 전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술적인 면이냐 아니면 언어적인 면이냐. 근데 제가 나이도 있고 미국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돼서. 제가 제일 못하는 것이 손으로 하는 일이거든요. 제가 동양인이고 북한 사람이란 장점을 발견하고 거기서 아, 내가 여기의 어느 분야, 모르는 분야에서 뚫고 들어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니 씨는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 식당 복무원 (웨이트레스) 등 여러 직업을 가져봤다고 하는데요. 1년 여의 시행착오를 통해 언어가 가장 해볼만한 분야라고 판단해 통역직에 도전했다고 말했습니다.

문) 결심은 했지만 배우는 과정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답) 네, 처음에는 상당히 두려웠었다고 합니다.

“많이 두려웠죠. 왜냐하면 시험에 합격해야만 자격증을 주잖아요. 처음에 들어가 많이 못 알아들었어요. 근데 거기서 좋은 방법을 발견했죠. 통역 수업이니까 녹음기로 리코드 해서 다시 집에 가서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아, 나도 할 수 있겠다. 내가 부딪히면서 내가 뭐가 부족한지 깨닫게 되잖아요. 그럼 부족한 것에 집중하게 되고, 그 부족한 것을 향상시키면 내가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수준 높은 일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지만 본인 자신이 진보가 있는 것을 조금씩 느끼니까 챌린지가 더 되는 것 같았어요.”

제니 씨는 북한에서처럼 출신성분의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노력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공부했다고 말했습니다.

문) 제니 씨가 거주하는 도시에서 통역하는 사람들은 대개 어떤 사람들인가요?

답) 대개 이민자 출신의 고학력자나 미국에서 자라난 이민 2세대들이 많다고 합니다. 제니 씨는 그래서 처음에는 주눅이 들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할 수 있다고 해서 들어 갔는데 생각 밖에 다 박사나 석사 학위가 있고, 대학도 졸업하고 이런 사람들이 통역반에 들어와서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어려운 질문들을 하니까요. 여기서 태어났는데, 예를 들어 러시아, 멕시코, 여기에 어릴 때 들어온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여기 와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다 대학 졸업한 사람들이었어요.”

문) 통역을 하면 보수는 얼마나 받나요?

답)통역을 가르치는 가톨릭 기관 관계자는 ‘미국의 소리’ 방송에 첫 보수가 시간 당 15달러 50센트부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경력이 쌓이면 시간당 20불, 30불로 올라가는데요. 통역은 매일 정규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만 일하기 때문에 대개 다른 직업을 갖고 있거나 자유직, 즉 프리랜서들이 많다고 합니다. 제니 씨는 중국에 인신매매로 팔려가 6년여 동안 살았던 경험이 있어 중국어에도 능통한데요. 이 때문에 한국어보다 중국어 통역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 3개 국어를 통역하고 있다는 얘기네요. 대단하군요.

답) 네.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언어에 소질이 없이는 이렇게 단시간에 언어를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죠. 물론 제니 씨는 북한의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전력이 있습니다. 졸업을 하지는 못했지만 문법 공부에는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미국에 입국하기 전 태국에 2년 간 머물면서 자신들을 도와주던 미국의 한인 2세들로부터 틈틈이 회화를 공부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잠시 제니 씨가 영어로 직접 얘기하는 소리를 들어보시죠.

자신의 미국행을 도와줬던 한 인권단체의 영상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해 직접 본인 목소리로 녹음한 내용인데요. 미국에서의 삶에 여러 도전의 과정이 놓여 있지만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믿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니 씨는 현재 지역 2년제 초급대학에 입학해 학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문) 저희가 최근에 외부 자본으로 평양에 영어와 컴퓨터 강습소가 설립돼 곧 개강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 전해드렸었는데요. 북한에서도 영어 열기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제니 씨가 북한 출신으로 뭔가 청취자 분들께 조언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답) 네, 그렇지 않아도 제가 그런 질문을 던졌는데요. 대답이 아주 명료했습니다.

“북한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는 것 같아요. 농담도 적고, 딱 틀에 잡힌 이야기를 하고요. 글쎄요. 영어는 많은 감각기관을 사용해서 할수록 더 많이 기억되고 단어단어로 암송하지 말고 상황 속에서 문장 속에서 단어를 암송하면 그 단어가 잊혀지지 않아요. 그리고 생활 속에서 자기가 한국말로 하더라도 그 것을 다시 영어로 말하는 습관을 붙이면 금방 배울 것 같아요.”

진행자: 저도 제니 씨 얘기 들으며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계속 열심히 해서 미국에 정착하는 많은 탈북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영권 기자 수고했습니다. 최근 미 중서부 L시에서 의료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한 탈북 난민 제니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 듣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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