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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목사, 평양서 북한 정부 고위 관계자 면담


미국의 저명한 부흥전도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이자, 민간 구호단체 ‘사마리탄즈 퍼스’회장인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가 북한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레이엄 목사는 방북기간 중 사마리탄즈 퍼스의 대북 지원 사업 현장을 둘러보고 북한 정부 고위 관리들과도 만날 예정입니다. 이진희 기자가 자세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은 13일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의 평양 도착을 보도하면서, 그레이엄 목사가 도착 직후 ‘미-북 사이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한 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조선에 왔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레이엄 목사가 회장으로 있는 구호단체 사마리탄즈 퍼스는 성명을 통해, 그레이엄 목사가 평양에 지어질 새로운 치과센터를 위해 19만 달러 상당의 장비와 물품을 북한 측에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사마리탄즈 퍼스와 미국 정부 산하 국제개발처 USAID가 공동으로 건설한 발전기 체계로 전기를 공급받는 지방 병원도 방문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레이엄 목사는 이번 방북기간 동안 북한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도 만날 예정이며, 14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박의춘 외무성을 면담했습니다.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은 이번이 세 번째 입니다. 특히 지난 해 7월 방북 때는 대북 사업을 점검하고 재건된 평양 봉수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봉수교회에서 설교를 한 미국인 목사는 그레이엄 목사와 아버지 빌 그레이엄 목사가 유일합니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이번 방북과 관련한 성명에서, 평화와 하나님은 국경이나 정치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갖고 성직자로서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을 통해 미-북 지도자 간 간접대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레이엄 목사는 전임 조지 부시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이며, 아버지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 1992년 방북 당시 미-북 간 관계 정상화를 지지한다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를 김일성 주석에게 전달한 바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994년에도 김일성 주석과 회담한 뒤 미국에 돌아와 김 주석의 메시지를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달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제 종교단체 오픈 도어즈의 폴 에스타브룩스 (Paul Estabrooks)목사는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레이엄 목사가 미-북 간 민간대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에스타브룩스 목사는 그레이엄 목사가 이번 방문 중 북한 지도자들과 몇몇 정치적인 문제들, 특히 종교자유와 관련해 미-북 간 대화가 계속돼야 한다는 견해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에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습니다. 일부 탈북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북한 당국이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을 허용하고 환대하는 것은 그의 명성을 이용해 북한이 종교자유 국가라는 것을 선전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합니다.

이와 관련해 에스타브룩스 목사는 북한 당국이 지난 몇 년 간 외부인들에게 전시용 교회를 보여주면서 종교자유 국가라는 선전을 해왔으며,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을 이용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에스타브룩스 목사는 그러면서도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이 긍정적인 결과를 많이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그레이엄 목사와 북한 당국자들 간 대화는 현 시점에서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관련한 미국의 우려를 북한 지도자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 가족은 오랫동안 북한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아버지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992년과 94년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으며, 어머니 루스 벨 그레이엄 여사는 1934년 평양의 기독교 학교에 다녔습니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가 회장으로 있는 구호단체 사마리탄즈 퍼스는 지난 1997년부터 의료와 치과 사업에 중점을 둔 대북 인도주의 사업을 벌여왔으며, 지원 규모는 1천만 달러가 넘습니다.

사마리탄즈 퍼스는 북한이 큰물 피해를 크게 입었던 2007년에는 약품과 응급 물품을 직항 전세기로 북한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미-북 간 직항 전세기가 운행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어서 당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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