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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7월 28일


1794년 7월 28일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혁명의 기본 이념을 충실히 완수하겠다며 '공포 정치'를 펼친 프랑스 혁명가,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됩니다. 이로써 약 5만 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5년 전인 1789년, 프랑스 민중들은 기근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고 있었지만 귀족과 특권 세력은 부귀 영화를 누리는 등 사회는 극도로 불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에 불만을 품은 시민 계급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킵니다.

혁명에 나섰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혁명 정부가 세워지자, 권력을 장악한 혁명 세력은 그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려온 성직자와 귀족들을 처형시켰습니다. 또한 이들은 당시 국왕이었던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처형합니다.

그리고 이들 혁명 세력은 국민들이 직접 뽑은 지도자들이 정치를 하는 공화정을 선포합니다. 이 때 등장했던 정치가가 바로 로베스피에르였습니다.

권력을 장악한 로베스피에르는 부자들에게 강제로 부채를 부과했고, 최고 가격제를 실시해 국민들의 삶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어기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벌을 내리거나, 심지어 단두대에서 처형함으로써 국민들을 공포로 몰고 갔습니다.

이에 로베스페에르의 반대 세력은 1974년 7월 27일, '테르미도르 반동'을 일으켜, 로베스피에르를 체포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하루 뒤인 1974년 오늘,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세운 '단두대'에서 처형됩니다.

봉건적인 왕정체제를 없애고 민중이 주인 되는 공화국을 세움으로써 근대 혁명을 이끈 로베스피에르, 하지만 그는 공포정치의 대명사로 전락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1741년, 7월 28일

바이올린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가 사망합니다.

어렸을 적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아온 비발디는 15살 때 수도사가 됐고, 25살 때는 사제가 돼 평생을 베네치아에 있는 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 교사로 일했습니다.

비발디는 학생들을 위해 수 많은 작품을 작곡했고, 또한 이탈리아 각지를 순회하며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등 활발한 음악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비발디가 45살이 되던 해 그는 그의 대표작인 사계를 작곡합니다.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사계절을 음악으로 표현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습니다.

비발디는 평생 40여 곡의 오페라를 비롯해 다수의 종교 성악곡과 가곡을 남겼으며, 특히 그가 작곡한 기악곡은 음악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비발디의 주요 작품으로는 조화의 영감, 실내소나타 12곡과 바이올린 소나타 17곡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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