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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사 미군, 58년 만에 고향에 안장


한국전쟁 당시 19살의 나이로 참전해 전사한 미군 병사의 유해가 전사한 지 58년 만인 지난 22일 고향인 미국 미주리 주에 안장됐습니다. 이진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미국 미주리 주 지역 텔레비전 방송인 `하트랜드 뉴스’ (KFVS12 Heartland News)가 보도한 데이비드 우드러프 일병의 장례식 현장 상황입니다.

우드러프 일병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지 반세기가 훨씬 넘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와 지난 22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주리 주 세인트 루이스의 제퍼슨 바락스 국립묘지에 안장됐습니다. 묘비에는 ‘사랑하는 아들, 형제, 아버지, 그리고 친구를 기리며’라고 적혔습니다.

우드러프 일병의 유일한 혈육인 딸 투르디 랜킨 씨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어졌고,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없어졌다며 슬퍼했습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담당국에 따르면 데이비드 우드러프 일병은 한국전쟁 당시 충청남도 홍성 인근에 주둔했던 미 제 2보병사단 9연대 소속이었습니다. 1951년 2월, 중공군이 미군 지역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오면서 제 2보병사단은 남쪽으로 후퇴했고, 우드러프 일병은 이 과정에서 중공군에 사로잡혔습니다. 당시 불과 19살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우드러프 일병은 이후 황해북도 수안에 있는 포로수용소 중 한 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드러프 일병의 유해는 지난 90년 대 초 북한 당국에 의해 미 국방부에 전달됐습니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담당국의 래리 그리어(Larry Greer) 공보관은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지난 1991년과 1994년 사이, 북한 측으로부터 받은 2백8개의 유해 상자에 우드러프 일병의 인식표와 유해가 담겨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인식표는 1991년에 인도받은 상자 중 한 곳에, 수안에서 발굴된 유해는 92년에 받은 상자 중 하나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리어 공보관입니다.

미 국방부는 우드러프의 형제 중 한 명인 맥아더 우드러프 씨의 유전자 표본을 검사해, 데이비드 우드러프 일병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북한에서 유해를 건네 받은 뒤에도 17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리어 공보관은, 북한에서 보내온 상자들에는 많게는 7구의 유해가 섞여 있어 신원 확인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2백8개의 상자에 담겨 있는 수 천 개의 유해 조각에 대한 대조 작업과 유전자 견본 추출을 거쳐 신원을 확인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는 설명입니다.

그리어 공보관은, 현재 우드러프 일병 외에도 신원확인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는 미군 유해가 더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미국 국방부 집계에 따르면 한국전쟁 중 실종됐다 발견된 미군 유해는 모두 4백89구로 이 중 100구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8천 여명의 한국전쟁 참전 미군이 실종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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