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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가톨릭 신부 살해범, 스페인 법원에 피소


중미의 엘살바도르에서 가톨릭 신부6명이 살해된 사건이 20여년 만에 외국 법정에서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엘살바도르 전 대통령과 군 지휘관들을 스페인 법원에 고소했는데요, 스페인은 과거에도 반인륜적사건은피고의국적에없이다룬적이있습니다. 김연호 기자와 함께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MC: 엘살바도르 하면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는 나라인데, 군인들이 신부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 중미 대학이 있는데요, 이 대학 안에 있던 예수회 신부 숙소에 지난 1989년 11월 한밤 중에 군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군인들은 신부 5명을 붙잡아서 정원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에 총살했습니다. 그리고 숙소 안에 있던 신부 한 명을 더 찾아냈는데요, 같이 있던 가정부와 16살짜리 딸까지 모두 살해했습니다.

MC: 그런데 이 사건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겁니까?

기자: 당시 신부들 숙소에서 일하던 가정부가 한 명 더 있었는데요, 이 가정부가 숨어서 사건 현장을 모두 목격했습니다. 가톨릭 신부들이 정부 군에 의해 살해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부 군을 지원하던 미국도 이 사건을 계기로 엘살바도르에서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MC: 사건의 진상은 밝혀졌습니까?

기자: 사건이 일어난 지 2년 뒤에 유엔이 후원하는 '진상 규명위원회'가 사건의 전말을 밝힌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르네 에밀리오 폰세 장군이 신부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린 장본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폰세 장군은 중미 대학 총장이었던 이그나시오 엘라쿠리아 신부를 표적으로 삼았고, 목격자도 남기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나머지 희생자들은 엘라쿠리아 신부와 함께 숙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된 겁니다.

MC: 육군 참모총장이 직접 나서서 엘라쿠리아 신부를 살해하라고 명령한 이유는 뭡니까?

기자: 엘라쿠리아 신부가 우파 군사정부와 반군 게릴라 간의 평화회담을 주선하고 있었는데요, 이걸 못마땅하게 여긴 군부가 엘라쿠리아 신부를 제거하기로 한 겁니다. 군부는 반군과의 협상을 통해 내전을 끝내라고 촉구하는 엘라쿠리아 신부를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불순분자로 간주했습니다 . 엘살바도르는 지난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우파 정권과 좌파 반군 간의 내전에 시달렸습니다. 10년 넘도록 계속된 내전으로 숨진 사람만 7만 명이 넘고 재산손실도 2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92년에 유엔이 중재한 정부와 반군 간의 평화회담이 결실을 맺어서 내전이 끝났습니다.

MC: 신부들을 살해한 사람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습니까?

기자: 91년에 재판이 열리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기소된 10명 가운데 2명만 살인 혐의가 인정돼 징역30년을 선고 받았구요, 이 2명도 2년 뒤 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재판부는 다른 피고들에 대해서도 가벼운 죄만 물어서 징역형을 면하게 해줬습니다.

MC: 그런데 인권단체들이 이 사건을 다시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 나섰다구요?

기자: 그렇습니다. 스페인의 인권연합과 미국의 정의 책임 본부, 이렇게 두 인권단체가 스페인 법원에 사건 책임자 14명을 고소했습니다. 살인을 직접 명령하고 지휘했던 사람들 말고도, 전직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고소됐습니다. 인권단체들은 부르카르드 전 대통령이 사건을 은폐했고, 라리오 전 국방장관은 살해 명령이 결정된 고위급 회의에 참석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MC: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엘살바도르가 아니라 스페인에서 이 사건을 다룰 수 있는 겁니까?

기자: 인권단체들은 스페인 법원이 이 사건을 국제법상의 이른바 보편적 사법권에 의거해서 다뤄주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처벌돼야 한다는 게 보편적 사법권의 논리인데요, 스페인 법원에서 실제로 이 논리가 적용된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 98년 스페인 법원은 남미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영국에서 체포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요, 피노체트를 스페인으로 데려와서 재판을 받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피노체트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범죄인 인도 과정을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도 스페인 법원은 아르헨티나와 과테말라, 칠레 등지에서 반인륜 범죄자들의 사건을 심리했습니다. 이번 사건도 그 연장선상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스페인 법원이 고소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고의 신병 확보에 나설지 여부는 한 달 정도가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MC: 반인륜적인 범죄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결국 법의 심판을 받기 마련인데, 이번 사건이 어떻게 결론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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