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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들의 뇌리에 생생한 1920년대의 대공황


미국의 언론들은 지금의 금융위기를 보도하면서 '대공황 이후...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대공황 이란1929년 10월, 미국에서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시작돼 1939년까지 유럽과 전세계적으로 파급된 경기침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나타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그때 이래 처음이거나 최악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곧잘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미국의 대공황을 실제로 겪었던 생존자들로부터 당시의 상황에 관해 들어봅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보통 사람들이 처음으로 신용거래로 물건을 사기 시작했고 주식시장에서 투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29년에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해 수 많은 은행들이 쓰러지고 투자주식의 가치가 90 % 이상 폭락한 가운데 실업자가 성인 네 명 가운데 한 명꼴로

늘어나는 등 혹독한 경기침체가 몰아쳤습니다.

어린시절, 미국의 대공황을 겪었던 나이 80대, 90대의 고령자들은 각기 다른 기억들을 갖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나누고 있습니다. 당시 집안 어른들은 미국인 모두가 함께 겪는 어려움이기 때문에 견디어낼 수 있다고 가족들을 격려했다는 것입니다.

아이오와주의 샐리 바두 할머니는 당시 아버지가 은행원이었기 때문에 대공황기의 은행과 관련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두 할머니의 부친이 다니던 은행이 문을 닫은뒤 수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전화를 걸고 찾아오는 바람에 부친은 마을에서 떠나버렸고 가족들은 아파트로 이사해야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바두 할머니는 방이 없어 복도에서 잠을 자야하했다고 말합니다.

올해 아흔 살인 조지 포터 노인은 당시 조지아주, 주도 애틀란타에서 살았었다며, 식량사정이 궁핍해 여름이면 시골 친척집에 가서 지내곤 했다고 회상합니다.

포터 노인은 당시 어렸기 때문에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수 없었지만 어려운 시기였기는 해도 비통한 시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이들은 무릎이 다 헤진 바지를 입고 다니면서도 야구공의 겉이 다 달아빠지면 전선에 감는 테잎으로 공에 감아 빈터에서 야구경기를 하곤 했었다고 포터 노인은 어려웠던 시기를 회상합니다.

당시 미 동북부, 코네티커트주에서 살았던 포터 할머니는 당시 다행히도 부친이 직장에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큰 고생은 않했지만 온 가족이 매우 돈을 아끼며 검소하게 살았다고 말합니다.

로이스 포터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기억난다면서 길건너에 살던 단짝 친구는 아버지의 자살로 극심한 충격을 겪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런 일이 있은뒤 많은 사람들이 몹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됐고 그에 비해 자신의 가족은 얼마나 다행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로이스 포터 할머니는 또 정장 차림의 남자가 뒷문으로 들어와 아무 일이나 시켜달라고 사정을 하다가 나중엔 한 끼니만 먹여달라고 애걸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대공황기에 남부, 플로리다주에서 살았던 프란시스 잭슨 할머니는 어머니가 가족을 보살피던 것을 기억합니다.

올해 여든 아홉 살인 프란시스 잭슨 할머니는 부친이 서른 다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뒤 어머니가 일곱이나 되는 자식들을 혼자 키우느라 고생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는 식품 가격이 너무 비쌌다며, 프란시스 잭슨 할머니는 어머니가 수박 껍질을 먹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고 어려웠던 때를 기억합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겐 수박 의 맛있는 속을 먹이면서 본인은 껍질만 먹곤 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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