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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북-중 국경의 두 얼굴 II] 갈수록 어려워지는 북한주민들의 삶


한국과 서방세계의 일부 전문가들은 장마당 등 초기 형태의 북한 내 경제 변화가 점진적으로 체제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하지만 북-중 변경지역에서 '미국의 소리' 취재팀이 만난 북한 주민들과 중국 상인들은 주민들의 삶이 오히려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식량난으로 꽃제비가 다시 늘고, 당국의 장마당 단속 강화와 부패는 주민들의 삶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북-중 국경지역 현지취재를 통해 보내드리는 특집방송,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전해드립니다.

[단동 북한인 전문 여관방 소음]

이 곳은 중국을 방문한 북한 사람들이 묵는 변경지역의 한 여관. 며칠 뒤면 평양과 인근 지역으로 돌아갈 남성 여러 명이 비좁은 방에 누워 연실 담배를 피워댑니다

이 방을 잠시 방문한 북한 출신 중국인이 북한의 식량 문제를 꺼내자 갑자기 논쟁이 벌어집니다.

중국인: 쌀이 요즘 (장마당에서) 2천 4백원에 나와요. 많이 떨어졌어요. 올감자가 나와서 나 뎠디. (올감자가) 장마당에서 1 킬로에 3백원에서 2백원 해요.

기자: 그럼 올해 식량 사정이 고비를 넘기겠네요?

중국인: 택도 없지. 왜? 비료 안쳤지. 약도 안쳤지. 바빠요. 바빠. 아니 영영 바빠!

북한 남성: 무슨 소리 하는 게야! 석유 나오면 일 없어!"

북한의 식량난이 영영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중국인의 말에 석유가 나오면 일이 없다며 벌컥 화를 내는 평양 남성. 실랑이를 벌이던 이 중국인은 결국 답답한 듯 한 마디를 툭 던지며 방을 나갑니다.

(한심한 듯) "나와요 나와! 그래 석유 콸콸 나와요!"

방 안에 있던 북한 남성들은 낯선 취재팀을 의식한 듯 북한 정부 찬양에 열을 올립니다.

"미국이 (식량으로) 조선 도와주는 것은 미국의 의무야. 전쟁 때 미국이 얼마나 조선 사람 죽이고 파괴했나. 조선인들은 원쑤(원수)로서 미국과 일본 놈들을 잊지 않아. 우리 가슴에 칼을 박았어."

한국이 올해 비료를 지원하지 않아 농사가 어렵지 않겠냐는 질문도 일축합니다.

"(비료를) 수입 안 하구 자체 해결하구 있다구.

기자: "내년에는 더 힘들지 않겠어요?"

북한 남성: "비축해 놓은 것이 있어. 일 없다구."

비축해 놓은 자체 비료가 풍부해 걱정 없다고 큰 소리 치는 북한 남성. 자신을 모 대학 교수 출신이라고 말하는 이 남성은 전력난도 문제 없다고 말합니다.

"구역별로 다르지. 10개 구역은 24시간 다 보내구. 변두리 구역은 그보다 조금 못하구."

인근 도시에서 만난 북한무역회사 대표도 북한 내 식량 상황은 만성적이라며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배고픔을 알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이젠 습관이 됐어요. 알 밥 먹다가 강냉이 밥 먹는다고 싫다는 사람도 없고."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북한 방문자와 무역일군. 하지만 친분이 있는 중국인 사업가를 통해 접촉한 00시 출신의 북한 방문객 고영숙 씨는 안전이 확보되자 북한주민들의 형편을 거침없이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남조선이 쌀 지원한 것 우리가 다 압니다. 남포항에 얼마 들어왔다. 청진항에, 원산항에 들어왔다. 외화벌이 회사에서 쌀 나르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도 댕기는데. 그게 다 외화벌이로 들어가고, 남포항에 들어오는 것은 군대에 들어가고 평양시에 풀고. 다 그런데 가지. 우리 일반 사람들은 받아본 적이 없죠."

비료에 대한 주민들의 걱정도 털어 놓습니다.

"야 금년에는 비료 안 들어와서 어떡하나…작년에는 남조선에서 와서 했는데…이런 애기들을 하지요."

기자: "불만이 많겠어요?"

"그러니까 못 먹으려니 하지요. 와도 다 군대 들어가야 하구 평양시 풀어야 하니까. 그렇게 인식하고 우리는 우리가 벌어 먹어야 한다, 하지."

전기 사정도 다르게 얘기합니다.

"밤에 잘 때 조금씩 고저 1-2 시간 정도 밤에 오고. 저녁에는 아예 오지도 않아요. 밥도 새까만 데서 먹죠 뭐."

북한을 오가며 20년 이상 무역 일을 하고 있는 중국인 사업가 왕처민 씨는 북한의 선군정치가 오히려 군대까지 굶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군대도) 식사 3끼도 제대로 못한다구요. 군대라는 게 무슨 나라 인민군대인데 인민들 것 훔치는 게 도둑놈 군대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도둑놈이 군대라구요."

북한의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꽃제비도 다시 늘고 있습니다. 다시 고영숙 씨의 말입니다.

"왜 없습니까? 점점 더 많아지죠. 엄마들도 달아나고 죽기도 하구. 할 수 없죠. 못 봐줘요."

중국인 왕처민 씨는 꽃제비들이 최근 형편이 좋은 라진 등 잘사는 구역으로 몰리고 있다며, 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겨울에는 추우니까 청진 조선소 석탄재를 파 가지고 거기서 형제들이 잤습니다. 그러다 밤에 모르게 공장이 돌아가니까 재가 다 떨어져서 허물어 아이들이 데어 죽었어요."

누구도 이들을 돕거나 보호해 주지 않지만 부모 잃은 꽃제비들의 형제애는 애틋하다고 말하는 왕 씨.

"형제끼리 동시에 콧물 질질 흘리면서도 데리고 다니며 다 먹이고. 그저 오빠가 여동생 먹이겠다고 그렇게 다니고. 겨울엔 비닐봉지 감아 가지고. 야~ 오빠가 제 동생 불쌍하다고 비닐을 손에 싸주고."

북한과 무역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몰래 도와주고 있는 또 다른 중국인 주순 씨. 주 씨는 북한에 들어갈 때마다 주민들의 삶이 더 악화되고 있다며 한숨을 내 쉽니다.

"도와주는데 생활이 향상되고 더 좋아지는 게 안보여요.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게 제일 답답하죠. 다음 달에 가면 조금 더 좋아지겠지. 근데 좋아지기는커녕 더 안 좋아지거든요."

세계식량계획(WFP)은 올해 북한의 식량난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최악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 북한주민들이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장마당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김일성대학 교수 출신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조명철 한국대외정책연구원 동북아경제협력센터 소장의 말입니다.

" 고난의 행군 시절에 겪었던 그 경험을 가진 북한 국민들이기 때문에 식량난이 좀 어렵다 하면 과거처럼 중앙정부를 보고 기다리는 국민들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대책을 취하고, 시장에 나간단 말이죠."

텍스트: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초기 형태의 시장경제가 장기적, 기능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잦은 검열과 장마당 규제 강화 소식은 그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중국 지방 공산당 간부 출신의 북한 전문가 장진성 씨는 장마당의 모습은 시장경제의 초기현상 보다는 생존전투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북한의 경제 변화는 순 생존전투죠. 체제를 흔들어 놓는 기초현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이라 봐야죠."

장 씨는 북한 정부의7.1 경제관리 개선 조치 역시 주민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좋은 변화가 아니라 악순환이죠. 사람들은 더 살기 힘들어지고. 객관적으로 볼 때 여러 단속이 많아 정신적 피해가 심합니다. 김정일을 위해 뭘 자꾸 바쳐야 하구. 여러 행사를 해야 하구."

텍스트: 중국인 사업가 왕처민 씨는 북한 정부가 정보 확산을 우려해 장마당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소식이 빨라야 장마당이 잘 됩니다. 그런데 그 것 때문에 장마당 크게 못하게 막습니다. 사람들이 아는 게 많아지기 때문에. 장마당에서 모두들 소식을 알게 되거든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물건이 어떻게 되는지. 그래서 (장마당) 못하게 하는 겁니다. 장마당 해도 1시간만 딱 규정해서 하구."

북한 출신의 경제 전문가인 김광진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북한 정부가 경제난과 재원 확보를 이유로 어떨 수 없이 종합시장을 허가했다며, 앞으로 거꾸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 북한 당국이 자기의 진정성이나 의지를 갖고 시장화를 진척시키고 개방화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북한 당국이 먹고 살만하고 경제 형편이 나아질수록 시장화 사회 이완은 계속 차단시키려고 할 겁니다. 원상복귀시키려는 것이죠."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북한주민들, 그리고 체제 유지를 위해 이들을 억누르려는 북한 정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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