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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북-중 국경의 두 얼굴 I]  밀수 성행하는 압록강 하구


1990년대 후반 대규모 아사자를 냈던 `고난의 행군' 이후 최악의 식량난을 맞은 북한주민들의 치열한 살아남기 몸부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극빈층 여성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중국의 시골로 팔려가고 있고, 중국 당국은 올림픽을 앞두고 국경 경비와 탈북자 단속을 대폭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압록강 하구에서는 밀수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북한과 인접한 중국 국경 지역 현지취재를 통해 오늘부터 다섯 차례 북-중 국경 지역의 생생한 움직임들을 보내드립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식량 밀매 실태를 전해드립니다.

[뱃고동 소리…]

지난7월 초 황해로 이어지는 압록강 하구의 한 부둣가.

자정이 넘은 시각. 밀물이 강가 갈대밭의 발목을 적시자 조용하던 배들이 갑자기 활기를 띄기 시작합니다.

[뱃소리 + 인부들 소리…]

북한의 인공기와 중국의 오성기가 나란히 걸린 깃대 밑으로 배를 가득 채운 쌀 가마니들이 보입니다.

행선지는 건너편 신의주의 부둣가. 옆 배에는 쌀 대신 가전제품과 식료품이 든 상자들이 가득합니다. 이 부둣가에서만 오늘 밤 1천t이 넘는 곡식과 온갖 종류의 생필품이 건너편으로 넘겨집니다.

[중국인 황쥐 목소리…]

중급 규모의 이 항구에서 운송을 중계하는 중국인 황쥐 씨. 그는 이 지역 주요 항구에서 7월 기준으로 1주일에 2만t 가량의 쌀이 북한으로 넘어간다고 말합니다.

운송비는t 당 중국 인민폐 8백원. 미화로 1백 10달러를 조금 넘습니다. 운송비가 t 당 2백50원에서 3백원에 불과하던 지난 3월 초와 비교하면 거의 3 배 가까이 오른 셈입니다.

"지금 밀수 많이 들어가요. 특히 한 달 간 아예 못 들어갔는데 6월 말까지요. (그 후) 거의 한 달 동안 운송해서 이 사람들이 백만원을 벌었대요."

이 곳을 통해 북한과 자주 교역하는 조선족 사업가 최주영 씨. 중국이 쌀과 강냉이 등 주요 곡식 수출을 전면금지하고, 북한 신의주에 비사그루빠 (비사회주의 검열)가 시작되면서 3월부터 밀수업계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합니다.

이 시기에 북한 내 대부분의 장마당에서는 쌀과 강냉이 값이 폭등했었습니다. 6월 말 검열이 끝나면서 밀매는 활기를 되찾았고, 운송비는 폭등했습니다. 때를 같이 해 북한 내 쌀값도 7월 초순 1 킬로그램에2천 5백원대로 내려갔습니다.

"강냉이 나가야죠. 비료 나가야지. 밀가루 나가야죠. 적어도 5-6만t은 가능해요. 엄청 나갑니다. 아니면 저 쪽 굶어 죽어요. 올해 말이예요. 못 나가면, 아이구 4월 달에 물건 못 나가서 굉장했어요."

일각에서는 미국의 식량50만t 지원 결정과 북한 내 햇감자, 보리, 밀 등이 수확되면서 장마당의 곡물 값이 떨어졌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최 씨 등 밀수업계 관계자들은 이 곳 압록강 하구의 밀수가 풀리지 않았다면 어림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미소 기계 소리…]

압록강 하구의 또 다른 항구 옆에는 아예 정미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부들이 기계에서 나온 쌀들을 바쁘게 옮기고 있습니다. 정미소 뒤 편에 위치한 대형창고에는 수북이 쌓인 쌀 가마니들이 보입니다. 대부분 북한으로 넘어가는 쌀들입니다.

[중국인 목소리]

정미소 관계자는 쌀25 킬로그램 한 가마니 당 중국 인민폐 75원씩 받고 북한에 판다고 말합니다. 쌀 품질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북한 측의 요구가 많아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이 관계자는 말합니다. 이 정미소는 아예 쌀 1 t을 배에 실어 안전하게 북한 측 관계자에게 전달하는 대가로 미화 5백 달러를 받고 있습니다.

쌀은 대부분 북한 정부가 운영하는 외화벌이 회사 등을 통해 북한 내부로 들어갑니다. 북한무역회사 대표 김용수 씨. 그는 복잡한 세관 절차와 북-중 정부 간 특수성 때문에 밀매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밤이구 대낮이구 들어갑니다. 압록강 물 줄었다 늘었다 하니까. 다 관리들 끼고 하죠. 저희들은 눈 감아주는 거죠. 환경이 좋아졌어요."

이 무역회사 대표가 말하는 운송비는 압록강 하구에서 만났던 밀수업자들의 말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쌀 1t 운송에 1백 달러씩 받아 먹습니다. 그래도 (북한에서) 수지가 맞으니까 나갑니다. 2백t, 3백t급 배가 버젓이 들어갑니다."

북한 대외보험총국 해외지사에 근무했던 김광진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밀매를 통한 곡식 유입이 북한 내 식량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말합니다.

"식량 수급에서 차지하는 몫이 상당부분을 차지할 거예요. 공급할 수 있는 단위들은 외화를 주고 공급하고, 그렇지 못한 단위들은 싼 것을 들여오겠죠. 그 것이 밀매의 형태로 거래가 되는 겁니다. 그 게 들어가야 기관들에서 기업소, 회사에서 공급이 되는 겁니다. 그 것이 차지하는 몫이 상당하죠."

[단동 기차소리..]

활기를 띠는 밀수업계와는 대조적으로2년 전만 해도 움직임이 상당히 활발하던 압록강 다리 (중조우의교)는 매우 한가합니다. 가끔 빈 트럭 한 두 대가 눈에 보일 뿐. 화물기차 역시 운행이 뜸합니다. 단둥 해관에서 통관 수속을 밟기 위해 트럭들이 길게 줄을 섰던 2년 전의 모습도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압록강에서 바라 본 밀수 통로는 그야말로 요지경이었습니다. 북한 정부 관리들 뿐아니라 보따리 장사꾼, 구호단체 관계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 통로를 이용해 식량과 물건을 북한으로 몰래 보내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계통의 한 구호단체는 최근 수 십t의 식량을 대부분 밀수 통로를 이용해 북한으로 보냈습니다.

"북한주민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작업으로 00보내기를 진행했습니다. 모든 과정들이 다 마쳤는데 30t을 생산해서 굶주린 북녘의 영혼들에게 전달하는 일들입니다."

국제사회와 민간단체의 지원 식량이 북한 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사례가 매우 적자 인도적 단체들이 이런 고육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정식 비자를 받아 중국을 방문 중인 북한주민 고영숙 씨는외부의 인도주의 지원 식량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쌀이 보통 항구로 들어오잖아요. 그 쌀이 몽땅 다 외화벌이 부서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욕하는 게 다 그거지. 들어오면 배급 줘야 하는데 배급 안주고 다 외화벌이에서 몽땅 갖고 가니까. 강성회사 밀영회사…이런 회사 있습니다."

고 씨는 돈 많은 장사꾼들이 외화벌이 회사와 연결해 대량으로 식량을 구입하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이 식량을 값싸게 구입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 문건 다 해 놓고 붙이지. 거기에 파니까 사람들이 새까매져서리 야메꾼들이 왕창 사가니까. 돈을 통째로 내는 사람들에게만 팔구. 그러니까 돈 있는 사람들은 5마대씩 가져다 먹구. 장마당에다 팔구."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때와는 달리 식량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돈 없고 배경 없는 일반 주민들이 밀수와 원조를 통해 들어오는 식량을 구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런 어려운 주민들에게 강냉이5만t을 조건 없이 지원하겠다고 제의했지만 북한 정부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대한 북한무역회사 대표와 북한주민 고영숙 씨의 엇갈린 반응은 단둥을 떠나는 취재팀의 마음을 씁쓸하게 했습니다.

무역회사대표: "아무리 못살아도 고저 우리 구호는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구호가 있으니까. 이명박이가 5만t 주겠다고 해도 안 받습니다. 자존심이 강합니다. 없어도 삽니다."

북한주민: "어째서 그러는가, 한 나라 백성들이 굶어 죽으니까 그렇게 (도와)주는데 받아서 먹이면 되는데 왠 특새야!"

북한 무역회사대표 김 씨의 손목에는3천 달러가 넘는 오메가 시계가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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