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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탈북자 사실상 인권사각지대 몰려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화교 출신 탈북자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미비해, 한국에 입국한 이들 탈북자들이 사실상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목숨을 걸고 한국에 들어왔지만,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통보만 받는 무국적 탈북자에 대한 소식을 서울 VOA 김은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 2004년 한국에 입국한 김천일 씨는 아버지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채, 법무부로부터 3개월마다 체류기한을 연장받고 있습니다.

중국 공안으로부터 자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김 씨에 대해, 법무부가 탈북자 인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에 따르면 “북한 이탈주민이란 북한에 주소와 직계가족, 배우자 등을 둔 사람으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 국적의 아버지와 북한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자란 김 씨는, 북한 국적이 아닌 외국인 등록증을 갖고 살다 탈북한 경우에 해당되므로, 현행법상 탈북자 개념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김 씨는 법무부로부터 중국인으로 분류돼 2005년 중국으로 강제추방됐지만, 중국 정부가 ‘중국인이라는 근거가 없다’며 다시 돌려보내는 바람에 무국적 탈북자로 전락했습니다.

김천일 씨: “출입국에 들어간 지 한 일주일 정도 후에 관리소 직원이 ‘너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출입국 안에서 10년이 넘게 있어도 못 나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자유를 찾아 왔는데 10년 간 그 안에 갇혀있을 생각에 기막혀서요.”

이후 법무부 산하 외국인보호소에 8개월 간 수용됐다 지난 해 2월 출소한 김 씨는 현재 외국인 불법체류자로 분류돼, 일시적으로 보호해제된 상태입니다.

신분상의 제약 탓에 현재 김 씨는 합법적인 취업도 불가능하고, 의료보험도 없어 불편한 몸으로도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한국에 들어오며 큰 산들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며 “국적까지 바라지 않으니, 남들처럼 일만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김천일 씨: “마음대로 어디 안정적인 곳에서 마음대로 일도 찾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에서 낮은 곳에서부터 착착 올라가는 것. 이게 제가 새로 가진 인생의 꿈과 목표인데요. 그게 잘 안되니깐 더 답답하고 실망이 들구요. 두통도 생기고, 사람이 최소한 먹고 살아야 하진 않나요. 제 힘으로 먹고 살겠다고 하는데 그것마저 안해주니깐 정말..”

북한인인 남편과 결혼해 줄곧 북한에서 살았지만 화교라는 이유로, 한국 국적을 받지 못한 장모 씨도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장 씨는 한국에 들어온 아들과 딸을 뒤따라 2002년 입국했지만, 외국인등록조차 되지 않아 사실상 무국적 상태입니다

억울한 마음에 2004년 통일부와 행정소송까지 벌였지만 재판부는 “화교인 장 씨는 중국인으로 분류돼 북한 이탈주민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장 씨의 아들 최명호 씨는 “중국에서 정착할 수 있는 방법도 수소문해봤지만, 중국 당국 역시 문화대혁명 때 재외국민 호구를 다 말소했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최명호 씨: “저희도 할 수 없이 통일부에 소송을 걸었는데 세 번 다 가결을 맞았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엄마가 중국에 국적이 있는 중국사람’이라는 판결이 나왔는데요. 엄마가 지금 아픈 상태인데도 일절 채택된 보호가 전혀 없습니다. 한국출입국사무소에서 얘기하는 것을 보면 ‘그대로 살라’는 것이거든요.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으니깐 일단은 우리 자식들이 힘들더라구요.”

전문가들은 무국적 탈북자의 양산을 방지하기 위해선 국적 판단 절차를 비롯한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영환 북한인권시민연합 조사연구팀장은 “법무부가 탈북자 국적확인 과정을 생략한 채, 외국인 노동자로 간주해 탈북자를 중국으로 강제 퇴거하는 것은 결국 무국적 난민만 양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 팀장은 탈북자 국적판단을 최종 결정하는 법무부 등 유관기관과 국제법, 인권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국적 판단의 공정성을 확보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영환 북한인권시민연합 조사연구팀장: “판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법무부가 참여해서 혹은 민간전문가들도 이를 옆에서 제대로 집행하고 심사하는지를 관찰하고 참여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주는 것도 좋구요. 문제는 결국 법률의 공백지대가 생겼기 때문에 이를 메꿔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북한시민연합은 지난 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출, 관련 제도를 정비토록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이 문제는 제도적으로 보장이 돼야 하는 복잡한 사안이므로 시일을 두고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케이석 휴먼라이츠워치 연구원은 “한국 정부는 무국적 탈북자들을 무턱대고 추방할 게 아니라, ‘무국적자와 난민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 등 국제법에 근거해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케이석 연구원: “한국 정부에서는 무국적자 관련한 협약에 가입한 당사자로서 이분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일 국내법으로 보호해야 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면 사실은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국제법 가입을 했다면 실제 가입 당사국으로서 보호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국내법을 정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내법 개선이 가장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

장복희 선문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김천일 씨의 경우, 본인 진술 외에는 중국 국적에 대한 근거자료가 없는데도, 관련 부처들이 중국 국적자로 규정했다가 중국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자 결국 무국적 상태로 방치된 경우”라며 “무국적자의 근로권을 보장해주는 등 국내법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장복희 선문대학교 법학과 교수: “국내법이 미비한 상태이므로 국제법인 무국적지위에 관한 협약에 따라 그에 맞는 처우를 하구요. 점차 국내법 제도를 개선해나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취업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던가 법에 언급이 돼야겠죠. 일단 이와 같은 사례는 사실상 탈북자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외국인들과 선별해서 처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 탈북자 문제를 전담하는 통일부 정착지원과의 한 실무자는 “북한 이탈주민 정착지원법에서는 화교 출신 탈북자는 모두 중국인으로 규정되고 있다”며 “현행법을 넘어서는 사항에 대해선 정부에서 여러 방안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미국의 소리 김은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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