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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 정책 어떻게 결정되나?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최근 부시 대통령의 북한 정책에 반대하며 의회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한 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북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볼튼 전 대사의 활동을 계기로, 미국의 대북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지 살펴봅니다. 최원기 기자입니다.

미국의 정치 중심지인 워싱턴에서는 최근 흥미로운 장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까지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지냈던 존 볼튼 씨가 미 의회 의원들을 잇따라 만나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워싱턴에서 1만km 떨어진데다 유일사상을 신봉하는 북한에서 보면 볼튼 전 대사의 이같은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볼튼 전 대사는 한때 자신이 섬겼던 조지 부시 대통령을 겨냥해 ‘정책이 잘못됐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최고 지도자를 비판하는 것은 물론, 그것도 전직 관리가 지도자의 노선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다원주의를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국가인 미국에서는 대북 정책 결정과정도 다원적이고 복잡합니다. 또 북한에 대한 시각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정책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정책 자체가 바뀌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볼 때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혼란스럽거나 모순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미국의 정책결정 과정을 북한과 비교해 볼 때 크게 네 가지가 다릅니다.

첫째, 북한에서는 외교정책을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한 사람이 결심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미국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것은 똑 같습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정책을 결정할 때까지는 정부 내 목소리는 물론이고 의회, 언론, 전문가 그리고 동맹국인 한국의 견해까지 수렴한 후에 결정을 내립니다. 자연 정책 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물론 정책 수렴 과정에서 갖가지 잡음이 날 수 있습니다.

둘째, 정부 내에서도 각자 북한에 대한 시각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인물은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두 사람입니다. 대개는 이 두 사람이 방침을 정해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면 정책이 결정됩니다. 그러나 간혹 대통령이 정부 내에 다른 각료의 의견을 더 존중하면 그 사람의 견해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부시 1기 행정부가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당시 국무장관은 콜린 파월이었지만 부시 대통령은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존 볼튼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 등 대북 강경파의 견해를 더 존중했습니다. 이 때문에 부시 1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강경한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셋째, 미 의회가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지난 1999년 봄 북한이 금창리에서 핵개발을 하는 것 같다는 의혹이 일자, 미 의회는 자체적으로 전직 국방장관인 윌리엄 페리를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했습니다. 페리 전 장관은 이후 평양을 방문한 뒤 유명한 ‘페리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의회가 행정부를 대신해 자체적으로 대북 정책을 수립한 사례로 꼽을 수있습니다. 이밖에도 의회는 자주 청문회를 열어 국민들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수렴합니다. 또 의회는 예산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 이를 무기로 행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넷째, 언론도 대북 정책을 세우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지난달 12일 `뉴욕타임스' 신문이 북한이 시리아에 핵물질을 수출했다는 기사를 게재하자 예정된 6자회담이 당장 연기됐습니다. 이어 미국 내 대북 강경파와 온건파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신문에서 이 문제를 놓고 연일 치열한 공방을 펼쳤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경우 기존의 대북 정책 기조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나머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언론이 대북 정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정부와 의회, 그리고 시민과 여론의 다양한 견해를 참작해 대북 정책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같은 의견 수렴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잡음도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정책이 결정되면 대통령은 정책을 꾸준히 밀고 갈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참작해 민주적 방식으로 정책을 세웠기 때문에 그만큼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많이 받는 정책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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