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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공동선언7주년 특집 시리즈] 미국의 시각…‘한반도 비핵화는 통일의 선결 조건’


6.15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은 한반도를 바라보는 미국의 인식과 한-미 동맹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한-미 동맹의 근간을 이루는 북한에 대한 인식을 놓고 한-미 간에 차이가 생겼고, 이로써 안보협력 분야에서 많은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7주년을 맞아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보내드리는 특집 방송,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한반도 내부의 변화를 바라 보는 미국의 인식과 한-미 관계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김근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2000년 6월, 한국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손을 맞잡은 지 7년이 지났습니다. 남북한은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룩한다는 6.15 공동선언의 취지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진행했습니다. 개성에 한국 기업이 입주했고, 1백50만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금강산을 찾았습니다. 또 남한과 북한을 연결하는 철로를 따라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이 이뤄졌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인식과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7년 간 미국사회에도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1990년대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미-북 관계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클린턴 행정부가 물러나고, 보다 강경한 대북 인식을 지닌 부시 행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두 번째는 미국민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 테러로 안보에 대한 우려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는 6.15 공동선언으로 협력의 물꼬를 튼 남북관계와는 정반대로, 미-북 관계를 더욱 경직되게 만들었습니다.

급기야 부시 대통령은 북한 정권을 테러를 지원하는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미국 정부는 북한의 불법활동을 이유로 더욱 강력한 경제제재를 추진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이런 대북관의 차이는 양국 간 동맹 관계에 어느 때보다 많은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미 동맹은 북한을 공동의 위협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 한-미 관계의 실질적인 변화는 안보 분야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지난 2월 한-미 두 나라 국방장관은 미국이 갖고 있는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2012년에 한국에 이양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 재배치와 감축도 이뤄집니다. 양국 정부는 전작권 이양이 한-미 동맹이 성숙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의 요인으로 한국과의 대북 인식 차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라는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미국 국제관계센터(IRC)의 존 페퍼 국제 담당 국장은 “북한에 대해 보다 강경한 입장을 원하는 미국의 요구에 한국이 주저함을 보이면서 미국도 이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미군 감축과 한국에 대한 군사장비 이관에 있어서 미국의 엄격한 태도, 또 일본과의 군사 협력 확대 등을 그런 조치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미-북 관계가 경직되면서 한-미 관계 변화도 오히려 위축됐다는 대조적인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 북한 담당관을 지낸 조엘 위트 씨는 “안보 분야를 포함한 한-미 관계 변화는 세대의 변화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며, 만약 미-북 관계가 좋았다면 한국의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 더 느슨해졌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대북 인식 차이가 한-미 관계에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은 남북한 교류 증대와 궁극적으로 통일을 원하는 당사자 중 하나입니다. 경제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남북한 협력을 통해 북한이 개방되고 변하기를 강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또 통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남북협력이 보다 원칙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워싱턴의 입장입니다.

고든 플레이크 미국 맨스필드재단 소장은 한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하고, 북한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려면 북한과의 양자관계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과 달리 국제무대에서 존중받는 위치에 오른 한국은 특히 미국과 같은 동맹국과의 협력과 이를 통한 국제적 영향력을 대북 정책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플레이크 소장의 지적입니다.

미국 전문가들은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한 통일의 가장 큰 저해 요소로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을 꼽았습니다.

북한은 핵 능력을 보유함으로써 자주적인 전쟁억지력을 갖추게 됐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외교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이는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오히려 핵실험을 통해 남북한 모두 외교적으로 주변 강국에 더욱 의존하게 됐고, 이는 자주적인 통일이라는 6.15 공동선언의 취지에도 배치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무부 북한 담당관을 지낸 조엘 위트 씨는 “핵실험을 통해 북한은 중국의 외교적 지원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고, 한국도 미국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며 “따라서 6.15 공동선언의 취지를 고려해볼 때 지난해는 별 진전이 없었던 한 해”라고 말했습니다.

고든 플레이크 소장도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가 아니라 국제적인 차원의 안보 문제”라면서 “따라서 남북한 관계를 남북한 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문제로 만들고, 한반도 평화도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는 핵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가 선결돼야 한다는 것도 미국 전문가들의 전망입니다. 특히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북한의 핵실험을 통해 동북아 안보정세에 큰 변화가 일어난 현 상황에서 미-북 관계가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황금기로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조엘 위트 씨는 “미국은 항상 남북한 통일을 지지해왔고, 또 앞으로 남북한 통일에 있어서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통일된 한국에 핵무기가 존재할 가능성이 남아있는 한, 미국은 물론이고 다른 한반도 주변국들에게도 통일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제관계센터(IRC)의 존 페퍼 국제 담당 국장도 “통일로 가기 위해서 북 핵 문제는 어느 시점에서든 반드시 풀어야할 문제”라며 “하지만 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며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 등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시작하면, 미-북 관계 진전 등 통일을 향한 다른 쟁점들에 대한 논의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6.15 공동선언 이후 화해와 통일을 지향하던 남북협력은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으로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과 2.13 합의는 6자회담을 통한 북 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습니다. 이제 비핵화가 가시화되고, 남북한 협력은 물론 주변국들과의 다각적인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통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워싱턴의 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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