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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정동영 전 장관은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회견에서 남북한 간에 대화가 단절됐을 때는 인도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면서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중단된 쌀과 비료 등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 전 장관은 또 지난 6년 간 부시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악의적 무시가 현재의 북 핵 사태를 초래했다면서 미국이 북한 핵 해결의 의지가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한 우선순위부터 높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 전 장관은 또 남북정상회담이 꼭 열려야 한다면서 그래야만 한반도 평화와 핵 문제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윤국한 기자와의 회견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지난 10월 말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전격 합의했지만 북한과 미국, 중국 사이에 베이징에서 열린 준비회담에서 부터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6자회담 재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이라고 보나.

= 서로 믿음이 없다는 게 제일 어려운 점이다. 또 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지 1년 만에 다시 준비접촉을 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입장차가 꽤 많이 벌어져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렵게 결정된 6자회담 개최이니 만큼 하루빨리 날짜가 잡히는 게 북한에도 미국에도, 또 6자회담 참가국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1년여 동안 북 핵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이유가 무어라고 보나.

=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상호불신이 제일 근본적인 문제이고 표면적으로는 금융제재가 9.19 합의 직후 제기됨으로써 여기에 북측이 격렬히 반발하고 나서면서 교착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9.19 베이징 합의에는 북이 원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고 미국이 원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국제사회가 원하는 게 다 들어 있다. 핵심이 북한이 갖고 있는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철폐하는 것이고 대신 북한은 에너지를 포함한 경제지원을 받고 미-일과 관계를 정상화하며 평화협정도 논의를 시작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니 합의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북 핵 문제를 푸는 핵심이다.

-미국에 대해 대북정책조정관을 특사로 파견하고 장관급 차원에서 북한과 직접대화를 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고위급 간 직접대화가 북한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보나.

= 미국이 북한 핵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우선 이 문제에 대한 정책의 우선순위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워싱턴에 와서 확인한 것은 미국에 북 핵은 순서로 봐서 8~9번째 밖에는 중요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와 이란, 레바논, 이스라엘, 시리아, 인도, 중국과의 관계 등을 나열하다 보면 북 핵은 저만큼 밑으로 밀려 있다. 이 우선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예컨대 미 의회가 부시에게 요구하고 있는 대북정책조정관을 임명해 본격적으로 정책을 재검토하고 지금까지는 형식을 고집해 왔는데 이는 절차에 불과하니 크리스토퍼 힐 대사 같은 사람을 평양에 보내는 것도 문제를 푸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미국과 직접대화를 원해왔기 때문에 서로 원하는 것을 할 때 신뢰도 생기게 되고 해법에 대해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북한 핵 성적표가 나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가장 큰 잘못이었는가.

= 지난 6년 간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한국과 마찬가지로 갖고 있었지만 결과는 비핵화가 아닌 핵 확산이 이뤄졌다. 미국은 그 과정에서 북한에 대해 악의적 무시로 일관하면서 내버려둬도 나쁠 것 업사는 태도를 보였고 이 것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진정으로 북 핵을 해결하고 싶다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붙잡고 씨름해야 한다. 헨리 키신저 박사를 이번에 만났는데 그는 북 핵 문제가 이란 핵 문제보다 풀기 쉽다고 했다. 이 문제를 북한보다 훨씬 더 힘이 있고 덩치도 큰 나라들이 모여서 해결해내지 못한다면 과연 외교라는 게 어디에 쓸모가 있겠느냐는 게 키신저 박사의 말이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이후 북한에 대한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했다. 이제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한 만큼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다.

=인도적 지원은 상황과 관계없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동포애 차원에서 굶고 있는 이북동포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인 데 그동안 잠깐 중단된 것이 안타깝다. 남북대화가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는 인도적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수월하다. 북한은 중단된 이산가족 면회소 사업을 즉각 재개하고 남한은 중단된 쌀과 비료 지원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시 행정부 일각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문제삼고 있다. 특히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해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북한을 돈을 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 금강산 관광 사업은 남북한 간의 해빙을 위한 사업으로 화해의 상징이다. 또 꿈에 그리던 금강산에 가볼 수 있는 기회를 남쪽 국민들에게 줬고 북한은 화해의 상징으로 영토의 일부를 개방했다. 또하나는 이 사업은 민간기업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민간기업의 사업에 정부는 가능한 한 개입하지 않는 게 좋다. 금강산 사업을 닫는 게 북한을 처벌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한 민간기업의 손해는 물론 화해협력에 상징성 있는 사업을 중단해 남한 스스로를 처벌하는 결과가 되는 게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북한은 핵 문제 외에 인권과 탈북자, 불법행위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6자회담을 통해 북 핵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인권 등 사안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갖고 남북 간 회담 등에서 적극 다뤄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그동안 유엔 결의안에 기권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핵 등 변화된 정세를 고려해 결의안에 찬성했다. 그동안 한국은 인권에 대해 몇 가지 원칙을 견지해 왔다. 하나는 보편적 가치로서 한국도 예민한 관심과 함께 개선위해 노력한다는 것이고 또 북한의 정치적 인권개선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굶어서 고통받는 인도적 경제적 인권을 돕는 것도 북한 인권 개선에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해 왔다. 이번 결의안 찬성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지만 여기에 덧붙여 한국 정부가 취해온 경제적 생활적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국내적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저자세, 채찍 없이 당근만 있는 접근방식이라는 비판에 동의하나.

=서방세계에서는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해 늘 채찍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는 지난 50년 간 봉쇄와 압박, 채찍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증오와 대결, 대치가 계속되고 한반도는 늘 불안했다. 탈냉전의 역사를 위해 고안된 게 바로 포용정책이다. 일부 인사들은 포용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핵실험을 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는 논리적 정합성이 없는 모순이다. 화해협력 정책은 핵실험을 막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 아니라 남북한의 적대정책을 청산하고 탈냉전 시대로 가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이코노미스트> 잡지가 2007년 세계전망에서 북한의 체제붕괴를 전망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과거에는 걸핏하면 북한 붕괴임박설이 분분했지만 요즘은 북한도 상대적으로 많이 외부세계에 노출됐고 오고가는 사람도 많아 근거 없는 풍설은 많이 줄었다. 남쪽의 입장에서 북한의 체제붕괴는 현실성도 없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본다. 북한 체제가 개혁과 개방을 향해 연착륙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중국과 베트남 모델로 개혁 개방해 생활수준을 점차 향상시키면서 국제사회에 정상국가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 보다 온건하고 적절한 방책이다.

-통일부 장관 재직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다. 김 위원장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나. 또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북한 내부의 국정전반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울러 국제정세에 대단히 밝다는 느낌과 함께 모든 관심이 미국을 향해 쏠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즉, 북한의 체제생존과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미국으로부터 공존의 의지를 확인하고 체제보장에 대한 약속을 받을 때만 핵도 내려놓을 수 있고 국제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

-지금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난다면 무슨 얘기를 하고 싶나.

= 남북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금 남한의 참여정부가 5년 차인데 김 위원장으로선 약속을 지켜야 하는 점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공동성명에서 서울 답방을 약속했는데 서울 답방은 내가 작년에 평양을 방문했을 때 장소는 서울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떤 장소에서든 열려야 한다. 그래야 한반도 평화와 북 핵 관련 진전된 입장을 서로가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하루속히 정상회담이 열렸으면 한다. 민족적 견지에서 보면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한반도만 유일하게 냉전의 외로운 섬으로 남아 있다. 이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뒤처지고 지체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를 통해 서로 돕고 번영을 모색키로 합의한 바 있다. 또 6.15 정신에 따라 북에도 남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하루빨리 한반도 비핵화 달성과 함께 공동의 평화와 번영, 희망의 길로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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