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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학자들, 개천절 맞아 단군 논문지 펴내 (도성민)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한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한민족의 뿌리라고 하는 단군의 건국이념입니다. 북한은 단군릉을 발굴해 완공한 1994년 이후부터 ‘단군제’를 지내고 단군이 나라를 세운 개천절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오늘 10월 3일 단기 4338년 개천절을 맞아 평양의 단군릉에서는 남북한 공동의 3번째 개천절 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또 서울에서는 개천절을 즈음해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남북학자들의 공동 논문집이 발간 되었습니다. 자세한 소식 서울 통신원 연결해 알아봅니다.

Q : 미국에서는 단기라는 연호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올해가 단기 4338년이죠?

A : 그렇습니다. 기독교적인 영향으로 전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서기 2005년에 2333년을 더하면 한민족 역사를 알 수 있는 단기 4338년이 됩니다. 흔히 반만년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Q : 평양의 단군릉에서의 개천절 행사도 올해로 세 번째를 맞았구요....

A : 그렇습니다. 오늘 10월 3일 오전 `개천절기념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 이 주관한 `천제(天祭)봉행단' 150여명의 남측인사가 북한 고려항공 전세기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해 평양 단군릉에서 천제봉행 의식을 치렀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개천절 남북공동 행사는 2002년에 시작되었다가 지난해 남북경색관계로 중단되었다가 올해 재개 되어 3번째를 맞았습니다.

Q : 한국은 10월 3일 개천절을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지요? 또 서울시내에서도 대규모 경축행사가 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 : 네,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개천절민족공동축전 남측행사가 열렸습니다. 단군에게 올리는 제례를 선의식이라고 하는데 단군릉에서의 선의식과 같은 시간대에 서울에서도 선의식이 거행된 것입니다. 준비위 관계자는 "이념 대결을 떠나 남북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단군의 개국정신"이라며 "이번 행사는 남북화합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7천만 국민에게 드리는 선언문'을 통해 ‘홍익인간을 토대로 통일 한국의 공동 이념을 연구할 것’ ‘남북 공동으로 단기(檀紀) 사용’ 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Q : 북한이 단군을 역사적 인물로 평가한 것이 그리 오래전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A: 그렇습니다. 유물사관을 중요시하는 북한이 단군을 신화적 인물로만 평가해오다가 1993년 10월 평양 강동군에서 단군릉을 발굴하면서 그 태도가 변화된 것입니다. 신화적 존재에서 실재인물로 달리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단군릉에서 단군과 그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굴하고 ‘전자상자성 공명법'(電子常磁性 共鳴法)’을 적용해 측정한 결과 그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약 5011년 전의 것으로 확증됐다고 밝혔던 것입니다. (전자상자성공명법:연대측정방법으로는 논란의 대상이기도 했었음. 유롭에서 유물의 연대측정에 주로 사용하는 방법. 인체유공에 대한 것은 주로 탄소연대측정방식을 사용) 그 이후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단군릉에 대한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추진하였고 "단군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지배계급이 인민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조작한 것" 이라고 평가했던 이전의 태도와는 달리 단군과 고조선은 실재했으며 고조선의 수도는 평양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Q: 남북 역사학자들의 공동연구논문도 한민족의 뿌리는 단군에서 시작된다는 역사의식을 같이 나눈 결과물이겠지요?

A: 그렇습니다. 남한의 단군학회와 북한의 조선역사학회가 함께 참여한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를 살폈던 학술회의 발표 논문을 모은 책 '단군과 고조선연구‘가 9월 마지막날 축판되었습니다. 남측 단군학회 회장, 상명대학교 철학과 김상일 교수가 말하는 공동연구서 출간의 의미를 들어보시죠?

"북측과 2차례에 거쳐 개천절 행사를 가지면서 학술대회를 가졌어요. 거기서 서로 발표된 논문을 보아 책으로 냈거든요. 그사이에 여러가지 남북학자들 사이에 의견도 조율하고 많이 노출되어 있는데.. 이번 책에 아마 그대로 반영되어 있을 겁니다."

A :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습니다. 1부에서는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남북 공동연구'를 2부 '제1ㆍ2차 남북 역사학자 공동학술회의 발표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 6편의 남한 학자논문과 북측의 사회과학원 학자등 5폄의 논문을 게재했고

2부에서는 북측학자 손영종의 '단군 및 고조선관계 비사들에 대한 리해' 등 남북 학자들 논문 20편이 실려 있습니다.

Q : ‘단군과 고조선 연구’ 역사적 자부심이 강한 북한으로서도 중요시하는 부분인 듯하네요. 남북학자가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열고 또 그 논문집을 남측에서 출간하도록 하구요. 북한의 논문이 남한에 소개되는 것도 이례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A: 그렇습니다. 남측도 북측도 공동연구논문집을 발간하기로 하고 학술대회를 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동안 학자들의 개별적인 접촉을 통해 연구가 진행되어 왔고 98년 첫 접촉이후 공식적인 학술대회는 2002년과 2003년 두차례.. 하지만 남측의 단국학회에서 남북공동의 연구의 결과물의 의미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북측을 설득한 것이라고 합니다.

"북측에서는 반듯이 글을 쓰기 전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유시 혹은 훈시에 의하여 이런 연구나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런 말이 들어가요. 남측학자들에게는 어색하지 않아요.? 그런 구절같은 것을 빼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책을 내는 과정에서도 큰 논란꺼리 였죠"

Q : 공동 학술대회를 한다고 해서 남북학계가 같은 생각을 갖는 것은 아니죠? 단군과 고조선 역사에 대한 남북간의 의견차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고 말이죠?

A : 그렇습니다. 이 책을 출간한 단국학회에서도 단일한 결론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는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남북의 연구자들이 단군의 고조선 건국이 민족 상고사 속에 실재했던 역사라는 점에 동의했다면서 그것이 언제 어디에서 있었던 역사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서로 달랐지만, 단군의 건국으로부터 민족사를 서술해야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했다는 점에서 공동 연구서를 발행한 의의를 둔다고 밝혔습니다. 남한의 학자들이 말하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북측학자들과의 차이점은 크게 세가지입니다. 먼저 북한이 발굴해 대단한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는 단군왕릉에 대한 고증의 문제를 들 수 있는데요. 남측에서는 단군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유골에 대한 측정방법이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과 달라 연대 추정 등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전자상자공명법을 사용했는데 남측학자들은 그 방법이 정확한 방법은 아니다 ~ 측정방법이 달라서 그 방법이 차이가 나고요.."

A : 또 한가지는 단국신화에 대해 북측에서 사용하고 있는 고조선과 단군역사에 대한 역사적 사료에 관한 문제인데. 북측에서 강조하는 ‘한동국’ ‘규원사화’ 등의 역사적 사료를 남측 단국학회 회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한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북측의 역사적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평양의 대동강을 중심으로 60만년전에 인류의 고대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인류의 4대문명. 나일강-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문명에 버금가는 대동강 문명을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북에서는 대동강유역에 그것보다 더 오래된 문명이 있었다는 거죠. 그것이 바로 검은 모루 유적발견 이예요. 인간이 한 60만년전에 대동강유역에 살았다는 흔적을 말해주는 것이고 인류문명상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점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는 것 같아요. 남북사이에.."

Q : 그러니까 남한 학자들사이에 북한이 단군릉을 대대적으로 복원하고 그를 실존인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평양이 고조선의 수도였다는 주장 아래 고조선에서 고구려, 고려, 조선,북한으로 한민족 역사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띤 것이다라는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이군요?

A: 그렇습니다. 북한은 1998년 대동강 일대 고대문화 유적.유물들에 대한 발굴과 연구과정에서 거둔 성과에 기초해서 이 지역의 옛 문화를 `대동강문화'로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Q : 앞으로도 남북학자들 사이의 단군과 고조선 연구가 계속 된다구요?

A : 그렇습니다. 원래는 올해 개천절에도 평양이나 서울에서 학술대회를 하기로 했었는데 여의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꼭 3차 학술대회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히고 2002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종단과 학계, 해외동포 참여 등 민족 통합행사로 거듭나고 있는 개천절 행사가 한민족 통합을 위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815나 615선언보다도 더 큰 의미를 갖고 더 강한 결집체를 갖는 것이 바로 개천절행사였고, 그만큼 단군이란 것이 소중한 띠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단군이 우리의 조상이고 우리가 같은 배달민족이라는 것은 같았어요."

A : 남측 단국학회 관계자들은 책의 서두에서 단군은 민족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과제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진단하고 한민족을 단군의 자손으로 생각하는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강하게 남아있으며, 남과 북의 국가제도와 상징의례 속에도 이 같은 인식이 반영돼 있다고 기록하면서 서로의 견해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학문발전과 남북관계의 미래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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