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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가들 'DMZ 도보 횡단’ 계획, 미국서 논란


비무장지대 남쪽 철원 계곡 위로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가고 있다.(자료사진)
비무장지대 남쪽 철원 계곡 위로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가고 있다.(자료사진)

세계 여성운동가들의 비무장지대, DMZ 도보 횡단 계획에 대해 미국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 구축과 화해를 위한 유익한 시도란 평가와 함께 인권 유린을 일삼는 김정은 정권의 정당성만 강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세계 여성 비무장의 날인 오는 24일 걸어서 비무장지대를 횡단하겠다는 국제 여성 민간대표단의 계획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이 계획을 승인했고, 한국 통일부도 곧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세계 여성 평화운동단체인 ‘위민크로스DMZ’ 즉, ‘여성들이 DMZ를 넘다’는 최종 승인을 받으면 평양에서 국제 여성토론회를 연 뒤 24일 걸어서 DMZ를 넘어 한국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또 한국에서도 여성단체들과 비슷한 행사들을 열 계획입니다.

이 운동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인권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씨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 출신 메어리드 맥과이어 씨 등 30여 명의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 설립자인 크리스틴 안 씨는 지난달 유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평화 구축을 위해 행사를 계획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크리스틴 안] “So why are we walking? We are walking to invite all concerned to imagine a new chapter…”

대화와 이해, 용서로 상징되는 한반도 역사의 새로운 장에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행사를 열겠다는 겁니다.

여성운동가들은 또 군사 긴장의 완화를 통해 군사비를 남북한 주민들의 복지와 환경보호로 돌리는 한편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고 평화를 구축하는 모든 과정에 여성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여러 한반도 전문가들과 인권단체들이 이 계획에 대해 계속 우려를 제기하면서 미 언론을 통해 공방이 이어지고있습니다.

유대계 인권단체인 사이먼 비젠탈센터의 아브라함 쿠퍼 부소장과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지난달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행사를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평화행진이 역설적으로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옹호할 수 있다며, 평화와 인권 위기를 누가 조성하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진정으로 평화에 관심이 있다면 `선군정치’를 통해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공격해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할 게 아니라 80-90살의 노령이 된 한국전쟁 국군포로를 석방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들은 또 지난 수 십 년 간 지구상에서 북한인들보다 더 인권 유린을 당한 사람들은 없다며,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 (COI)가 규명한 북한의 반인도 범죄가 북한 정권의 정책 때문이란 사실을 먼저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반인도 범죄의 가장 큰 피해자가 북한 여성들이란 현실을 볼 때 여성운동가들은 북한 여성들을 먼저 대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비무장지대 행진이 아니라 북-중 국경지역에서 북한 정권의 압제 때문에 탈출하는 북한 주민들을 보호하는 행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워싱턴의 정보지인 ‘넬슨 리포트’에 스타이넘 씨가 먼저 반인도 범죄를 규명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읽은 뒤 방향을 결정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스타이넘 씨는 입이 있어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북한 주민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겁니다.

여성들의 도보 횡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권 유지를 위해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자국민을 압제하는 북한 정권과 맹목적으로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것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보 횡단 행사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글로리아 스타이넘 씨는 지난 2일 ‘워싱턴 포스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비판을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압박을 통한 변화 시도는 오히려 변화의 벽이 되며, 고립과 규탄, 주민과 관리들 사이의 접촉 단절로는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겁니다.

스타이넘 씨는 접촉의 단절은 더욱 단절을 가져오는 반면 잦은 접촉은 더욱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며, 이번 행사가 북한 정권을 정당화할 것이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스타이넘 씨는 특히 단체가 최근 공개한 동영상에서 거듭 비무장지대 걷기 행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스테이넘 씨] “It’s important that women in particular initiate and pursue peace effort…”

과거 북아일랜드의 종교와 지역 분쟁이 평화적으로 정착된 배경에는 여성들이 경계를 넘어 주도한 평화운동이 있었던 만큼 한반도에도 이런 여성들의 시도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미 외교정책 포커스의 존 페퍼 소장 역시 인터넷 매체인 ‘허핑턴 포스트’에 여성들의 도보 횡단 계획은 “멋진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페퍼 소장은 과거 제네바 북 핵 합의나 최근의 이란 핵 합의가 사안의 우선순위에 따라 핵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이번 도보 행사 역시 평화만들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안에 따라 초점을 달리하는 것일 뿐 북한의 인권 상황을 무시하는 게 아니며 다른 방편으로 인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페퍼 소장은 한반도 분단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환기하며 주요 정책결정권자들이 협상에 나서도록 돕는 상징적 행동이 필요하다며, 이번 행사가 그런 목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수미 테리 미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5일 ‘VOA’에 페퍼 소장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테리 교수]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지금까지 문제는 오히려 북한 정권이 일으키고 있는데 미국과 한국 탓으로 돌리려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 나누는 것은 좋은데 이 그룹이 어떻게 한국과 미국, 북한 사이에 대화를 나누게 할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정말 유명한 여성운동가입니다. 여태까지 여성운동에 삶을 바친 사람인데 그럼 여성 문제를 얘기하자는 겁니다. 지금 북한의 인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합니까? 여성 권리가 얼마나 심각하고. 그럼 이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란 겁니다.”

테리 교수는 “신뢰할 수 없는 북한 정권을 믿고 핵을 가진 북한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뒤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상황은 김정은 정권이 바라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평화조약 체결까지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언행”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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