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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르포: 카타르의 북한 노동자] 3. 뿌리치기 힘든 밀주의 유혹


카타르에서 유통되는 북한인 제조 밀주(싸대기) 사진. 일반 생수병에 담겨 있으며, 뚜껑이 ‘딱’하고 따진다.
카타르에서 유통되는 북한인 제조 밀주(싸대기) 사진. 일반 생수병에 담겨 있으며, 뚜껑이 ‘딱’하고 따진다.

북한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러시아와 중국, 중동 등 전세계 16개 나라에 약 5만 명의 노동자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의 근로조건은 한국의 한 민간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노예노동'으로 표현할 정도로 극히 열악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상황입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뿐아니라 임금의 상당 부분을 당국에 상납하고 있다는 겁니다. `VOA'는 최근 중동 카타르를 방문해 현지에서 일하는 3천여 북한 노동자들의 현황과 실태를 직접 살펴봤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보내드리는 현지 기획보도,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북한 노동자들이 왜 밀주 제조의 유혹에 빠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도하에서 취재했습니다.

[오디오 듣기] <현지르포: 카타르의 북한 노동자> 3. 뿌리치기 힘든 밀주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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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지자 도하 시내의 건설현장 주변도 어둑어둑해집니다. 바로 옆에서 화려한 조명을 뿜어대는 호텔과 뚜렷이 대조됩니다.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두 개의 다른 세상.

북한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건설현장 주변을 하염없이 돌고 있는 기자 앞에 음료수 페트병 두 개를 든 외국인 노동자가 지나갑니다. 짚이는 데가 있어 말을 겁니다.

[기자] You know Korean?
[노동자] Korean
[기자] Do they sell Sadeeqi?
[노동자] 외국어

싸대기(Sadeeqi). 아랍어로 “나의 친구”라는 이 단어는 중동 지역에서 몰래 거래되는 불법 제조 술을 가리킵니다. 카타르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 에이브 윤 씨의 설명입니다.

[녹취: 에이브 윤 사장] “그걸 갔다가 이 쪽에서는 싸대기라고 하는데 강냉이라던가 여러 가지를 과일 같은 걸 해서 술 만들어서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3국인들한테 파는 것 같아요.”

이슬람 율법을 지키는 중동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돼 있습니다. 카타르의 경우 일부 외국인들만 허가를 받고 술을 마실 수 있습니다. 한 달 수입이 미화 1천1백 달러 이상임을 입증하고 275 달러의 보증금을 내야 합니다. 한 달 급여가 400 달러에 불과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어림 없는 금액입니다.

따라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루마 (Luma)라고 불리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화장수를 사서 마시거나, 숙소 주변에서 파는 밀주를 구입합니다. 카타르에서 술을 불법으로 만드는 이들은 대부분 북한인들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인 건설업자 이종설 씨는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이 북한인들로부터 술을 구입하곤 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이종설 사장] “노동자들한테 들으면 북한 사람이 한다고 북한 사람들이 판다고. 노동자들이 북한 사람 만나면 술 있냐, 그래서 말 통하면 사서 몰래 먹다 걸리기도 하고. 그 것도 없어서 못 먹어요.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은 고생하고 힘들고 시달리는데 저희 나라에서 술 먹어본 사람들이라. 구할 방법이 없으니까.”

지난 14일 사나야 (Sanaiya) 산업지대를 지나던 한 북한인 차량이 카타르 경찰의 불시 검문에 적발됐습니다.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북한 회사의 운전수가 자동차 트렁크에 밀주를 가득 싣고 가다 걸린 것입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이 운전수는 바로 다음날 북한으로 추방됐습니다.

현지에서 유통되는 밀주의 주요 공급책이 북한인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카타르 사법 당국은 북한인 명의의 차량을 종종 불시에 수색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카타르에서 밀주 제조와 유통으로 적발돼 추방된 북한인들은 올해만도 총 61 명. 도하 시내 건설현장 앞에서 기자와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한 북한인 노동자는 밀주 제조에 가담하면 추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들 잘 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노동자 인터뷰는 신변안전을 위해 대독했습니다.)

[녹취: 북한인 노동자] “술을 만들어서 팔다가손 잡히게 되면 조국으로 척결되는 거고 경찰한테 잡히게 되면. 이번에도 우리 한 4 명인가 척결돼서 나갔는데. 아직도 계속 술 한 쪽으로 뽑으면, 팔면, 먹으면 이케 되는 거지. 우리 꼬리아는 뭐 대체로 휴식 날 같은 데는 술 한 잔 먹어야 휴식하니까니 점심에 술 한잔 먹는다 말입니다. 술 한잔 먹구 선 자지.”

[기자] 다른 사람들한테도 팔고?

[녹취: 북한인 노동자] “다른 나라 아이들한테도 팔고 그걸. 우리한테는 뭐 조선사람들끼리야 뭐 눅게 해서 줬음 좋겠는데 15원 씩이니까니 술 한 병이. 15원이면 벌써 다섯 달란데 15원이면. 다섯 달러 아프다 말이요. 조국에서 술 한 병 사 먹는게 돈 천원이면 사 먹는데 여기서 다섯 달러씩 내고서 사 먹는다는게 그거 수지에 안 맞는 데 어카겠쇼. 기분이 없으니까니 그 기분을 전환하자니 그 술 먹는다 말이요.”

북한인들은 남부 알 와크라 지역 등 도하 시내 외곽에 있는 주택을 빌려서 밀주를 제조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조된 밀주는 도하 시내의 북한 노동자 숙소로 옮겨 점조직으로 판매되며, 이런 활동은 북한 당국의 묵인 하에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인 건설업자 이종설 씨입니다.

[녹취: 이종설 사장] “걔들 얘기로는 여기 북한이 3개 회사가 있는데, 한 회사에 두 군데씩 허가를 내준데요. 한 컴파운드 안에 두 군데서 만들 수 있게 정부에서 허가를 내줬데요. 한 팀이 잡혀 들어가고 기구를 다 뺐기면 서로 삼 백 명이 북한에 전화하고 난리래. 빽을 쓸려고. 내가 그 라이선스 받게 해달라고.”

`VOA'와 인터뷰에 응한 북한인 노동자도 밀주 제조에 가담하면 큰 돈을 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북한인 노동자] “그걸로 돈 뽑아요 정확히. 6 개월만 하면 막대기 차요. 만 달라는 차니까니 6개월만에. 한 번 하는게 고저 보통 천 병 내지 이 천 병 나온단 말이요. 그 정돈데 뭐 그거 다 팔게 되면 10원에만 팔아도.”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려도 좀처럼 돈을 모으지 못하는 카타르의 북한 노동자들.

그들에게 밀주 제조와 판매는 쉽게 뿌리치기 힘든 유혹입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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