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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부녀절… "여성우대는 말 뿐"


평양에서 3.8국제부녀절을 기념해 진행된 중앙보고회 (자료사진)

평양에서 3.8국제부녀절을 기념해 진행된 중앙보고회 (자료사진)

오늘 3월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 입니다. 북한 당국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탈북자들의 한결 같은 증언입니다. 최원기 기자가 북한 여성의 현주소를 취재했습니다.

전세계 각국은 매년 3월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기여와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지난 1908년 미국에서 벌어진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시위로부터 시작된 이 날은 유엔이 1975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하면서 전세계적인 기념일로 자리잡았습니다.

북한도 ‘3.8국제 부녀절’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평양교원대학 교수로 있다가 2002년에 탈북한 이숙 씨의 말입니다.

[녹취: 탈북자 이숙] “부녀절은 국가적인 큰 명절은 아닙니다. 다만 여자들의 명절이라고 해서 조직별로 모여서 직장에서 모여서 먹고 그랬습니다.”

북한은 1946년 남녀 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발표하는 등 비교적 일찍 여성을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 헌법 77조는 ‘여자는 남자와 똑같은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갖는다’고 밝히고 있을 뿐아니라 ‘국가는 산전산후 휴가 보장과 여성에 대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여성을 특별히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북한 당국은 여성을 우대하는 것 같은 각종 제스처도 취하고 있습니다. 북한 선전당국이 제작, 보급한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노래입니다.

[녹취: 북한 노래 여성은 꽃이라네] “여성은 꽃이라네 생활의 꽃이라네…”

그러나 탈북 여성들은 남녀평등과 여성 우대는 말 뿐이며, 북한은 여전히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라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식사 준비와 청소를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경우도 많다는 겁니다. 함경북도 청진에 살다가 지난 2007년 탈북한 김수련 씨의 말입니다.

[녹취: 탈북자 김수련] “여자들을 때리는 가정폭력이 아무래도 한국보다 많고, 30대, 40대, 50대에서 그런 것이 많이 나타나는 것같아요.”

북한 당국은 또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 여성 비율이 20%에 달한다며 여성의 정치참여 비율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의 조은희 연구교수는 북한 같은 정치체제에서 그런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조은희 이대 연구교수] “북한에서는 그 비율이 높다고 하지만 실제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이 어느 정도 의사결정을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과 평등하다고 하기는 힘듭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북한인권 운동가인 수잔 숄티 디펜스포럼 대표는 북한에서 여성은 2등 국민 취급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수잔 숄티 디펜스포럼 대표] “NORTH KOREA TREATED WOMAN TERRIBLEY.."

북한 정권이 내세우는 남녀평등과 여성 보호는 말 뿐이고 최근 탈북 사태에서 보듯이 북한 여성들의 처지는 비참하다는 겁니다.

탈북 여성들은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북한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졌다고 말합니다. 다시 탈북자 김수련 씨의 말입니다.

[녹취: 탈북자 김수련] “여자들이 많이 생활전선에 나가고, 여자들이 돈을 벌고 그러다 보니까, 여자들이 지위가 높아지긴 했어요.”

북한 여성의 지위 향상은 주민들이 사용하는 은어에서도 나타납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이후 남편들은 돈을 벌지 못하고 집이나 지키고 있다는 뜻에서 ‘멍멍이’ 또는 ‘우리집 자물통’ 등의 은어로 불리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또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북한 여성들의 결혼관이 변했다고 말합니다. 전에는 당원을 1등 신랑감으로 쳤는데 이제는 돈많은 집을 선호하는 겁니다. 다시 이숙 씨의 말입니다.

[녹취: 탈북자 이숙] “그 전에는 군대에 갔다가 입당한 남자에 시집 가려 했지만, 지금은 돈 많은 남자에 시집을 가려 하고, 요즘은 탈북자 가족에게도 시집을 가려 한답니다. 남한에서 돈을 많이 부쳐줘서…”


탈북자들은 북한 여성들이 90년대 후반 세상물정과 외부 세계에 눈을 떴다고 말합니다. 여성들이 남성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들다 보니 활동력이 강해지고 자연 탈북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다시 조은희 연구교수의 말입니다.

[녹취: 조은희 이대 연구교수] “남성들은 직장을 출근해서 출근부를 찍어야 하지만 여성은 다소 자유로울 수 있죠. 그래서 장마당에서 여성의 비율이 90% 이상인 거고, 탈북자 중 여성의 비율도 그렇게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여성 탈북자의 비율은 전체의 10%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여성 탈북자의 비율은 70%에 이릅니다.

그러나 여성들이 북한을 탈출했다고 해서 문제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을 탈출한 많은 여성들이 중국에서 인신매매와 강제결혼을 겪고 있고,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한으로 강제송환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국의 소리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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